[로봇혁명은 시작됐다]2부-일·유럽 로봇현장을 가다: 유럽편⑥프랑스 원자력청(CEA)

 프랑스는 원자력 분야서도 세계 정상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 나라 전력수요의 80%를 원자력 발전이 담당할 정도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소를 유지, 보수하기 위한 극한로봇연구도 일찍부터 발달됐다. 프랑스 원자력청(CEA)의 로봇연구실을 찾아서 원자력 로봇개발 현황을 알아 봤다.



드골 대통령은 2차대전이 막을 내린 1945년 원자력 기술을 전담하는 국가기관인 ‘원자력청(CEA:Commissariat a l"Energie Atomique)’을 세계 최초로 설치했다. 미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프랑스가 제 목소리를 내려면 독자적인 핵무장과 원자력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미국의 집요한 견제 속에서도 프랑스는 결국 1960년 원폭시험에 성공했고 이후 원전산업에서도 세계적인 강국으로 올라섰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프랑스의 원전 설립에는 더욱 가속이 붙었고 현재 59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이 많은 원자력 발전소들의 설비 곳곳을 꼼꼼히 정비하고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려면 무인화된 로봇기술이 필수적이다. CEA의 로봇개발은 산하 시스템·기술 조합 연구소(LIST)가 전담하고 있다. 파리 외곽에 위치한 CEA LIST는 핵관련 연구시설답게 입구에서 보안검색이 극히 까다롭다. 이 곳에는 총 440명의 연구원들이 원전, 자동차, 항공, 군사, 의료용 IT분야의 첨단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LIST의 로봇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매끈하고 첨단화된 로봇장비는 도무지 찾아보기가 힘들다. 10년은 족히 됐음직한 낡은 원격제어 로봇팔과 특수장비들은 투박하기 그지 없다. 마치 허름한 공장 내부를 연상케 할 정도다.

안내를 맡은 이반 메아송 수석연구원은 “원자력 발전소는 매우 보수적인 로봇시장입니다. 아무리 오래된 로봇장비라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게 원칙이죠.”라고 설명했다. 원전에서 쓰는 로봇은 원자로의 핵연료 교환, 배관내부 검사, 원자로 수중검사, 배관청소 등 사용목적에 따라 극단적인 형태와 설계구조를 갖게 된다.

강력한 방사선, 진공, 고온 등에서 확실한 성능을 보장하도록 2중, 3중의 안전설계는 기본이다.

로봇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원자력 발전의 초창기인 1960년대. 핵발전소의 보수작업은 차폐복을 입은 사람이 원전설비에 직접 들어가 몸으로 때우거나 케이블에 연결된 기계팔로 한정된 범위에만 손을 대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배경에서 CEA는 원전용 로봇의 개발에 착수했다. 70년대 초반부터 사람을 대신해 투입가능한 로봇장비가 속속 등장했다. 방사능이 미치지 못하는 장소에서 정교하게 로봇팔을 움직이는 원격제어가 핵심기술이다. 이 때 설계된 원자력 로봇은 상당수가 30년이 넘도록 현역에서 활동할 정도로 높은 신뢰성을 자랑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원자로가 등장할 때마다 그에 걸맞게 로봇장비의 개량작업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최신 원격제어용 로봇팔은 보다 정교한 작업을 위해서 가상공간, CAD모델 기반의 포스피드백 기능을 갖추는 등 한차원 앞선 기능을 구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로봇장비도 현장에 투입되려면 오랜 시간 엄격한 검증과정을 통해 신뢰성을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핵발전의 중요시설에 투입되는 로봇장비는 고장이 날 경우를 대비해 반드시 과거의 반자동, 수동식 장비와 호환성을 갖춰야 한다. 원전시스템에 이상징후가 발견됐는데 투입할 로봇장비까지 하필 고장나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보면 원전로봇의 신뢰성 검증절차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LIST는 또한 원전사고시에 현장에 진입해서 상황을 수습하는 모바일 로봇도 개발을 완료한 상태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방사능 오염수치와 연기, 건물잔해 속을 뚫고서 원전설비의 사고발생지점을 찾아내고 응급조치를 취하는 로봇의 활약장면은 경탄할 정도였다. 이 곳에서는 길이 8.2m, 세계 최대의 원자로 검사용 로봇팔도 테스트 중이다. 거대한 보아뱀을 연상시키는 이 로봇팔은 총 5개의 관절로 구성되어 원자로의 좁은 배관시설도 쉽게 들어가서 구석구석 검사를 할 수 있다. 본체를 가벼운 탄소섬유로 제작해 떨림현상을 최소화하고 초진공 상태서도 신뢰성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이 로봇팔은 프랑스 남부의 핵기지인 카다라쉬에 2009년부터 건설하는 세계최초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 실제로 투입될 예정이다. 프랑스가 미국, 러시아 등 여타 원자력 강국을 따돌리고 인공태양을 만드는 130억달러 규모의 ITER사업을 따낸 배경에는 원자력 시설의 안전을 보장하는 로봇기술도 한 몫 거들었다.

LIST는 원전분야에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 보안용 로봇개발도 진행 중이다. 원자로에서 로봇팔을 작동시키는 원격제어기술을 수술용 로봇에 응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원격제어로봇을 사람의 턱뼈를 수술해 접합하는 과정에 접목하면 수술의 성공률을 크게 높인다는 설명이다.

보안용으로 효과적인 초소형 무인헬리콥터도 눈길을 끌었다. 4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무인 헬리콥터는 조종사가 지시하는 정확한 고도와 항로를 유지하면서 실시간 영상을 전송할 수 있었다. 공중에 뜬 비행체는 초음파센서와 자이로스코프를 내장하고 있어 손으로 밀치거나 눌러도 튕기듯이 제 자리로 돌아갔다. 담당 연구원은 무인헬리콥터에 전동모터 대신 가솔린 엔진을 달아서 바람이 거센 야외에서 정찰과 감시임무를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LIST의 로봇연구실은 환자의 재활을 돕는 의료용 로봇기술도 공개했다. 장애인들은 잡고자 하는 물건을 컴퓨터 화면에서 단지 지목만하면 로봇팔이 물건의 위치를 파악하고 잡거나 되돌려 놓는 것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1분내 사용법을 숙지하고 로봇팔로 물건을 잡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LIST가 주도하는 각종 로봇프로젝트는 원자력 강국 프랑스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서비스 로봇시장에도 응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인터뷰-이반 메아송 로봇연구소 수석연구원.

“원자력산업에서 사용되는 극한로봇기술은 여타 산업분야에도 응용할 여지가 높습니다.”

LIST 로봇연구실의 이반 메아송 수석 연구원은 사람이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위험구역이 많은 원자력 발전소는 일찍부터 극한로봇개발의 테스트 베드였다고 설명한다. 핵연료를 교체하거나 원자로 속에 들어가 검사를 하는 등 복잡하고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는 로봇장비를 개발하면서 쌓은 수십년의 노하우가 로봇공학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 그는 고유가 환경에서 원자력이 친환경적 에너지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원전건설에 따른 로봇수요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사람이 직접 핵발전시설의 내부에 들어가서 위험한 작업을 하는 일은 거의 사라질 겁니다. 기동성과 고화질 화상전송, 포스피드백 등을 갖춘 원격제어로봇은 사람에 못지 않은 유연한 작업능력을 갖기 때문이죠” 지금도 원자로 핵심모듈에 투입되는 로봇은 대부분 지난 70년대 초반에 나온 기본설계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로봇솔루션은 위급성이 낮은 핵폐기 작업에 우선 투입된다는 설명이다. 메아송 연구원은 서비스로봇시장에 대해서 신중한 의견을 나타냈다. “가격대에 민감한 저가형 서비스 로봇이 변덕스런 소비자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큰 공장시설을 감시하거나 지진피해를 복구하는 등 특수로봇이 LIST에는 더 맞는 로봇아이템 같습니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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