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춘호 원장이 남긴 것

 “낙하산 타고 왔지만 진짜 못 놓아주겠습니다.”

 전자부품연구원(KETI)의 한 직원이 30일로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김춘호 원장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직원의 말대로 그는 97년 6월에 낙하산을 타고 당시의 전자부품연구원장으로 부임했다. 올해로 9년이 됐다. 무려 세 번 연임이다. 무슨 독재시대도 아니고 산하기관장이 거푸 연임을 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참으로 신통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기자가 그를 취재원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무렵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미래 먹거리 산업을 찾기 위한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프로젝트가 범국가적으로 전개되고 있을 때 조찬모임과 패널토론회 등에 가면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 지적하고 대안을 내놓는 사람이 있었다. 정부 고위 관료와 산업계·학계·연구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다 모인 자리인만큼 조금은 긴장을 할 만도 한데 새하얀 머리의 이 젊은 박사는 거침이 없었다. 자신감이었다.

 부임 당시 권력의 힘을 업고 날아든 낙하산이라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특유의 자신감과 비즈니스 감각, 친화력은 주무 부처인 산자부를 비롯한 유관 기관들을 조력자로 변화시켜 나갔다.

 98년 226억원 수준이었던 연구사업 수입이 지난해에 700억원으로 늘어났다. 연평균 증가율이 15%에 이른다. 인력(정규직)도 164명에서 278명으로 늘었고 사업화 실적을 나타내는 기술이전 계약건수와 기술료 수입도 연간 87건(25억원)에서 301건(186억원)으로 증가했다. 그사이 KETI 본원도 평택에서 분당으로 확대 이전했고 상암동 DIC센터와 광주 DCC센터를 건립하는 등 기반 확충에도 많은 성과를 거뒀다.

 KETI만 키워놓은 게 아니다. 그동안 많은 연구기술을 중소기업에 이전해 기술경쟁력을 갖게 했고 타 연구기관과 학교·기업들을 융합시키고 공동 연구개발(R&D)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도 한몫 했다. 또 R&D에 비즈니스를 접목함으로써 개발기술을 상품화해 중소기업들이 자본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기자가 인사권자라 해도 놓아주기 싫지만 새로운 꿈을 개척하기 위해 떠나는 그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주문정기자·정책팀@전자신문, mj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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