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 바이오기업이 거칠고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아 온 처지는 마치 소설 속의 ‘꺼삐딴 리’가 카멜레온적으로 변신하며 모면해 온 위기 이상의 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생 바이오기업은 발전과 성장을 기대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데 힘써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바이오기업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더불어 처해진 환경에 민첩하게 적응하는 ‘꺼삐딴 리‘식의 사업모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기업에 대한 관심이 촉발된 2000년도, 우리나라에서 바이오산업이 반도체산업 이상으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은 거의 기정사실화됐다. 이때만 해도 바이오기업의 발전 양상이 미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내 바이오기업의 창업 과정을 보면 자금조달, 사업모델, 조직구조 및 연구개발 등 신생 바이오기업의 내외에 상존하는 환경변화의 구조가 미국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통점이라면 연구개발에 소요되는 자금이 많이 필요하고 그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수많은 바이오기업이 혹독한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하나둘씩 역사의 뒤로 물러나는 안타까운 광경을 많은 바이오기업인은 맥없이 지켜보아야만 했다.
우리나라 바이오기업의 성장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고질적 문제점은 바로 자금조달 능력이다. 금융권 차입은 상당히 까다롭고, 대부분 벤처캐피털이나 지인들로 구성된 엔젤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조달하는데 규모로 볼 때 연구개발로부터 사업화나 주식시장 상장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자금이 조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역사가 오랜 미국의 벤처캐피털처럼 대규모 자금이 장기적으로 바이오기업에 투자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투자규모 면에서 미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우리나라 바이오기업이 미국에서 성공한 바이오기업의 모델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은 적용상의 오류일 수 있다. 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벤처캐피털이 국내 바이오기업에 투자하는 규모는 미국의 100분의 1에 불과하거니와 개별 기업에 대한 투자 규모도 10분의 1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전체 투자 대비 바이오 투자의 비율도 열위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의 경우 바이오기업의 설립 초기부터 연구개발 성과를 통해 수익이 나올 때까지 지속적이며 장기적으로 투자를 하려는 성향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한 현상에 대해 벤처캐피털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은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의 역사가 짧다는 태생적 문제와 더불어 펀드 규모, 투자회수 기간 등의 펀드 성격 그리고 국내 바이오기업의 성공스토리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가 산재하기 때문이다.
국내 바이오기업이 겪는 재원조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과정 중의 초·중기 기술로 조기에 제품화를 이뤄 ‘캐시카우(cash cow)’를 확보해 현금흐름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확보된 수익원은 초기 바이오기업의 운영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어 예측할 수 없는 자금경색에 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개발의 제품화에 있어 반드시 완성된 기술만이 시장에서 통하고 수익을 발생시킨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개발 중인 중급기술의 적용이 가능한 제품이 큰 시장은 아니더라도 틈새시장에서 더 쉽게 수용될 수도 있다.
자금조달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맞서 성공적인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일련의 노력은 초기 바이오기업의 극심한 자금난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바이오기업의 연구원에게 ‘연구실에서 시장으로(from lab to market)’의 이동에 대한 이해 고취와 향후 신약의 기술이전과 같은 ‘빅샷(big shot)’이 일어날 때에 대비해 조직의 역량을 키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문보 메타바이오 사장 moonkim@metab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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