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채널 2.0시대의 팹리스 생태계

웹 2.0 시대에 들어 제조업체와 소매점 간에 힘의 중심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제조업체가 재고·가격·마케팅 조건을 소매점에 지시했다. 소비자는 코닥·크래프트·코카콜라 같은 제조업체의 브랜드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소비자가 월마트·타깃 같은 소매점의 브랜드를 구매한다. 이에 따라 고객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게 된 소매점이 재고·가격·마케팅 조건을 제조업체에 지시하게 됐다.

 ‘채널 2.0’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채널 2.0 시대의 고객은 벤더의 브랜드보다는 솔루션 제공업자(SP)의 브랜드를 구매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SP들은 벤더의 브랜드 힘에 의존해왔다. 마케팅 자료에는 ‘MS 골드 파트너’ ‘HP 공인 리셀러’ 등 벤더와의 관계를 자랑스레 내세웠다. 그러나 앞으로는 SP가 특정 벤더에 종속되지 않고 최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벤더의 경쟁적 기술을 대안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솔루션과 부대적인 기술지원, 컨설팅과 같은 맞춤 서비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채널 2.0 시대에는 고객에게 솔루션과 부대적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SP가 재고, 가격 및 마케팅 조건을 벤더에 지시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웹 2.0 시대에 고객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소매점이 제반 조건을 제조업체에 지시하는 것과 동일하다.

 나아가 SP들은 다음 5년간 대형 합병을 통한 글로벌화를 빠르게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는 현재 10만개가 넘는 채널 컴퍼니가 있지만, 5년 뒤에는 단 10개의 초대형 부가가치 재판매업자(VAR)가 무려 75%의 공간을 장악하고, 지역의 전문 중소 VAR가 나머지 25%를 나누어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중소 VAR가 초대형 VAR와 경쟁하고 벤더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전문화된 SP가 연대해 공급사슬을 형성해야 한다.

 흔히 차세대 반도체를 SoC(System on Chip)로 정의한다. 재사용 가능 설계자산(reusable IP)의 묶음이다. 최근에는 여러 개의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SiP(System in Package)가 우선되고 있다. 개발 기간이 짧고 개발 비용이 훨씬 싸게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채널 2.0 시대에는 어떤 성격의 칩을 가진 벤더가 SP들과의 가치사슬을 더 잘 엮을 수 있을까? 플랫폼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SP는 플랫폼에 다양한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의 옷을 입히는 방식으로 솔루션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떠한 칩이 플랫폼의 성격을 갖고 있나? 대표적으로 CPU와 같은 호스트 프로세서 칩을 들 수 있다. 인텔과 ARM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또 하나는 인터넷 표준 프로토콜의 프로세싱을 CPU로부터 오프로드(offload) 시키는 네트워크 코프로세서 칩을 들 수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다양한 임베디드 인터넷 디바이스의 IP 통신용 플랫폼이 된다.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인프라 분야다.

 최근 들어 유년기의 우리나라 팹리스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클러스터를 형성해 SiP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더해 채널 2.0 시대의 IT 채널의 변화, 즉 벤더로부터 SP로의 힘의 이동에 따른 SP의 초대형화 및 글로벌화에 가치사슬을 잘 엮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다. 즉, 마케팅과 연계된 구조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시장 선도적인 인프라 성격의 플랫폼에다 특정 응용분야에서 검증된 애플리케이션의 옷을 입히는 방식의 SiP가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이 커지면 플랫폼은 폭넓게 더 큰 가치사슬에 동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다양한 세분시장에서 채택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채널 2.0 시대에 요구되는 가치사슬의 피라미드 기반이 되는 시장 선도적인 인프라를 갖춤으로 해서 우리나라 팹리스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가 자생적으로 비옥한 토양을 일구어 갈 수 있다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윤봉 위즈네트 사장 yblee@wiz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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