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간 협력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참여정부의 최대 역점사업 중 하나인 상생협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서 이제는 대기업 간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간 상생이나 제휴가 물론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대기업 간 상생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최근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IT위기론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은 일단 대기업의 양보가 있으면 그나마 쉽게 해결될 수 있지만 대기업 간 협력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IT위기론을 타개하는 하나의 훌륭한 해법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IT산업에서 대기업 간 협력은 곧 삼성과 LG의 제휴다. 반도체나 휴대폰·디스플레이 등 핵심분야에서 두 회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두 회사 간 협력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비슷한 사업 아이템을 갖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라이벌 관계인 두 회사에 외부에서 협력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우스꽝스런 일로 비칠 수 있다. 두 회사의 관계를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로만 보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 정부 조사 자료를 보더라도 두 회사의 글로벌 제휴는 지난 2000년 이후 삼성전자는 약 50건, LG전자는 3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두 회사 간 협력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삼성과 LG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산자부의 지적대로 표준이나 R&D, 지식재산권 등에서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가장 대기업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누차 지적돼온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산업의 경우 기판 규격 주도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타결될 것처럼 보였지만 더는 진척되지 않고 있는 홈네트워크 표준문제도 마찬가지다. 두 회사가 협력하면 세계 표준을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세 확보를 위해 외국기업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두 회사가 각각의 표준을 고집함으로써 두 회사에 부품이나 장비를 납품하는 중소기업들도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관련 장비나 부품분야에서 글로벌기업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삼성과 LG 간에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 IT산업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IT위기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 정부가 앞장서 표준이나 특허권 대응, 공통기술 개발 등에서 두 기업 간 협력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일본의 경우 히타치 등 대형 IT기업들은 경쟁력을 상실한 반도체사업을 분리, 엘피다나 르네사스라는 공동의 합작사를 세워 우리와 미국기업을 추격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과거 일본 기업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처럼 두 기업의 대승적인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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