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 이어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샌드위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1위 반도체장비 업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스(AMAT)가 한국의 R&D센터를 전격 철수키로 했다. 인텔이 한국 R&D센터를 중국으로 이전하기로 한 데 이어 두 번째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코리아(AMK)는 이달 말 천안 본사와 R&D센터를 보명하이테크에 매각하고 본사를 성남 디자인센터로 옮기기로 했다.
AMK는 R&D센터 인력을 수원·이천 등 소규모 조립공장으로 재배치하는 한편 향후 사업방향을 국내 반도체업체를 대상으로 한 영업과 사후서비스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AMK 관계자는 “R&D센터는 사실상 90년대 후반부터 특화된 R&D 기능을 상실해 장비 개조나 단순한 장비조립 등의 용도로 이용됐다”며 “지사 사무실 이전과 함께 유명무실한 조직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AMAT는 작년 91억달러(8조5000억원) 매출 가운데 15∼20%인 1조5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한국에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의 눈-`脫 한국` 전방위 확산 우려 높아
인텔에 이어 AMAT마저 R&D센터를 철수한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뉴스다. 세계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분야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이들의 이 같은 결정은 다른 외국계 기업의 행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외국기업 R&D센터 유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탈 한국화’가 가속화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를 수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AMAT의 이번 철수 배경은 한마디로 한국에서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한국에서 연구개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미국 본사 차원에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한국의 주요 고객이 특화된 장비 개발 의지나 요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객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장비업체인 AMAT로서는 굳이 요구가 없는데 거금을 들여 투자를 감행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이는 AMAT의 일본 지사인 AMJ만 하더라도 일본 반도체업체가 자신들만의 특화된 장비 개발을 꾸준히 요구하고 공동 프로젝트팀을 운영하면서 미국 본사 못지않은 장비 개발 실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잘 반영하고 있다.
사실 한국 반도체업체는 그동안 세계 정상 진입을 위해 발빠르게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기술 연구에 집중했을 뿐 장비와 설비의 기초 R&D에는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한국의 주력사업인 메모리의 경우 비메모리와 달리 세계적으로 장비 표준화가 잘 된 것도 한 이유였다. 하지만 일본이 앞선 해외 기술을 접목해 장비 기술력을 꾸준히 제고하고, 국산화를 이룬 것에 비해 국내업체들은 많은 이점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텔이 R&D센터를 한국 대신에 중국에 설립하고, AMAT도 한국 R&D센터 매각과 대조적으로 올해 200㎜ 반도체장비 연구 및 생산시설을 중국으로 이전할 계획이어서 자칫 한국이 첨단 IT분야 R&D에서도 일본과 중국에 낀 ‘넛 크래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외국계 장비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특화된 장비 개발을 요구하더라도 전문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는 것도 문제”라며 “각종 세제혜택이나 인건비 등에서도 중국보다 못해 외국업체들이 R&D센터를 운영할 이유를 못 느끼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내 반도체 업체가 좀 더 멀리보고 기초 기술개발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한편 모자라는 인력을 학계 등과 연계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는 등 정부의 외국기업 R&D 유치 전략이 새롭게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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