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그랑데 카페모카, 휘핑크림과 시나몬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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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은 유학으로 미국에서 4년 넘게 살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역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영어의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문화 혹은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더욱 컸다.

 유학 초기 자주 갔던 학교 앞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어가 두려웠던 시기기는 했지만 적어도 커피 한 잔 시켜 먹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끊어내며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멕시컨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뭘 먹겠냐고 물었다. “카페모카 주세요.” 그것으로 사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야기했기 때문에 부시럭거리며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그러나 주문 과정은 짧은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뭔가 다른 질문을 했다. 순간의 공백 동안 나는 그것이 뭔가를 넣겠냐는 질문이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러고 보니 휘핑크림(whipped cream)이란 단어가 스쳤던 것 같다. 다시 묻기 귀찮을 때는 ‘예스’가 최고다. 그런데 또 묻는다. 계핏가루는 넣을 거냐? 역시 ‘예스’다. 이쯤이면 끝날 법도 한데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What size, Mam?(어떤 크기로 드릴까요?)” “…(뭐가 그렇게 복잡하니. 얼른 커피 좀 마시자꾸나.)” 이번에도 본능적으로 나온 내 대답은 예스(Yes)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며 이번에는 톤을 한 번 더 높여 같은 질문을 한다. ‘웁스!’ 순간적으로 예스 혹은 노를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Excuse me?(뭐라고 하셨죠?)” 되물으면 세 번째는 약간 천천히 그러나 엄청 딱딱한 톤으로 다시 한번 얘기한다. 이쯤 되면 직원의 노여움을 조금이라도 푸는 방법은 비싼 것을 먹는 거다. “그랑데, 플리즈(Grande, please)”가 나올 수밖에 없다.

 커피전문점은 그나마 쉬운 편이다. 식당에서 주문 한번 하자면 이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4명이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 셋, 짬뽕 하나요” 하면 주문이 끝나는 우리 식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전채요리에 메인요리에, 고기를 얼마나 구울 것인지, 감자는 튀길지 구울지, 소스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등등 선택의 범위가 넓다. 주문하다 허기를 느낄 정도다.

 처음엔 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이런 불편함이 ‘문화’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됐다. 교복을 입고 졸업한 마지막 세대에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고방식은 오히려 ‘불편함’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통일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하다 못해 짬뽕과 자장면, 볶음밥으로 ‘다양성’을 추구해도 당장 중국집 아저씨는 ‘통일해야 빨리 나온다’고 재촉할 것이 아니던가. 만약 짬뽕을 시키면서 ‘양파는 빼고 마늘은 반만 그리고 조금 덜 맵게 해달라’고 주문하면 당장 주문받는 사람의 얼굴 빛이 달라질 것이다. 아마 속에 있는 말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그렇게 주문해도 따로 못 만든다. 어떻게 일일이 다 맞추느냐’며 그 자리에서 화를 낼지 모를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성’의 문화는 여러 인종이 함께 모여 사는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기본 원칙임을 이해하게 됐다. 우리가 보기에는 다 같아 보이는 백인도 미국 사람, 유럽에서 온 사람, 호주나 캐나다 등에서 온 사람 등 얼마나 다양한 출신지를 가지고 있는가. 출신지가 다르다는 것은 곧 문화가 다름을 의미한다.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단지 미국뿐만 아니다. 이제는 어디나 세계인을 만날 수 있고, 세계인과 함께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이름하여 글로벌 시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다양성 지수는 글로벌 시대의 주역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그나마 커피전문점에서는 ‘카페모카 그랑데, 휘핑크림과 시나몬 넣어서’라고 주문할 수 있고, 커피믹스조차도 설탕과 프림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나오지만 판단의 잣대는 아직도 획일적이고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거나 존중하는 데 약하다. ‘글로벌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사고의 틀에서 다양성 지수를 높이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이지선 미디어U 대표이사 jisundre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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