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1984’에서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초래할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 책에서 과학기술은 가상의 독재자 빅 브러더로 현신한다. 빅 브러더는 모든 과학기술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인간을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마침내 노예로 만든다. 인간은 그저 빅 브러더가 조종하는 대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과학기술의 종속물에 불과할 뿐이다. 오웰은 과학기술을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인류를 파멸시킬 ‘악의 씨앗’으로 보았다. 오웰의 과학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세기말 사상과 맞물리며 20세기 후반을 지배하다시피했다.
반면에 레이 커즈와일은 오웰과는 정반대의 사상을 설파한다. 그는 ‘특이점이 온다’라는 최근 저서에서 과학기술이야말로 인간이 물리적 제약과 한계를 뛰어넘어 신이 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막 시작된 GNR(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 및 인공지능)혁명은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 고갈·환경 파괴 같은 위기를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21세기 과학기술 혁명은 인류에게 숙원인 영생과 유토피아적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다. 커즈와일은 과학기술이야말로 인류를 천상으로 인도해주는 복음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우주 창조의 권원이라 일컬어지는 특이점을 구명해내는 일이다. 과학기술은 20세기 IT혁명을 거쳐 21세기 GNR혁명으로 진전되고 있다. 우주의 신비, 생명의 비밀이 하나 둘씩 풀려가고 있다. 특이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특이점이 오웰에게는 인류에게 해악을, 커즈와일에게는 축복을 의미한다.
일찍이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해골에 고인 물이 꿀맛처럼 느껴질 수도,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오웰과 커즈와일은 과학기술의 해악이나 축복만을 바라보았지 미처 우리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현대 인류에게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원효의 깨달음이 절실하다. 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 코드에 원효의 사상을 담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21세기 GNR혁명기의 우리는 선조의 지혜와 마음을 다스리는 도에 겸허히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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