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에 맞선 고려인의 30년 항몽전쟁(1231∼1259년)이 끝나자 쿠빌라이가 세운 원나라는 갖가지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고려에 대한 간섭을 본격화했다. 특히 원은 양국 간의 통혼과 함께 공녀를 요구했다. 충렬왕은 원 세조의 공주를 맞아들여 부마가 됐으며, 해마다 약 150명의 고려 여인이 공녀로 끌려갔다. 원에 끌려간 공녀는 대개 궁인이나 시녀가 됐다. 원 말에는 궁중의 급사나 시녀 대부분이 고려 여성이었다. 이 때문인지 원나라 각지에 고려식 복식과 음식, 기물이 유행하게 됐다. 이를 두고 ‘고려양(高麗樣)’, 즉 ‘고려풍(風)’이라고 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고려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몽골 중심의 천하에서 유일하게 자주권을 지키면서 자국의 문화를 꽃 피운 셈이다.
‘고려풍’을 일으킨 데에는 원에 유입된 빼어난 고려문물이 큰 역할을 했다. 원 세조는 고려인이 기술이 뛰어나고 유학경서에도 능통하다고 찬사를 보내면서 ‘고려국유학제학사’를 설치해 고려 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도록 했다. 충선왕은 원나라 수도에 ‘만권당’이라는 학당을 열어 두 나라 석학이 만나 학문교류를 하는 장으로 만들었다. 원에 고려의 뛰어난 불전 사경본이 수출되고, 고려의 바둑 고수들이 초빙됐다. 물론 ‘고려풍’ 못지않게 몽골의 여러 이색풍속인 ‘몽골풍’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몽골풍’은 주로 복식과 음식, 언어 등 생활문화 영역에서 일어났으며,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이 ‘고려풍’과 ‘몽골풍’으로 대변되는 고려와 원나라 간의 교류에서 보듯 비록 이질문명이지만 생산적 융합이 이루어질 때 상호 윈윈하는 문화교류가 이뤄진다.
최근 수년째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한류(韓流) 붐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일부 국가에서는 한류 역풍의 조짐도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화관광부는 지난주 한글·한식·한복·한옥·한지·한국음악의 이른바 ‘한(韓)스타일’ 6대 브랜드를 산업화·세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스타일 육성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문화부는 이 사업이 세계 문화와 소통을 통한 새로운 문예부흥 시대 개척이라는 정책비전에 따라 추진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이 사업이 자칫 일각에서 우려하는 문화 우월주의로 비치지 않고 이국문화와의 개방적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새로운 한류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종윤차장·콘텐츠팀@전자신문, j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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