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본부 전설 1호(200일 연속 생산량 확대)’ ‘불가사 탄 시리즈(가장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달성한 사례)’
철통 보안을 뚫고(?) 도착한 하이닉스반도체 이천단지 MM동 5층 제조본부장 회의실. 이곳에 들어서면 지난해 영업이익 2조원대 기업으로 우뚝 선 하이닉스의 치열한 전투 현장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회의실에는 흰 벽이 없다. 사방의 벽은 모두 ‘장기목표’ ‘중기목표’ ‘단기목표’ ‘목표 이행 현황’ 등을 수치화한 각종 그래프로 도배돼 있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서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숫자’로 말하고 ‘숫자’로 표시한다. 그 숫자에 따라 ‘비둘기(제조목표치 무난히 달성)’ ‘옐로카드’ ‘레드카드’ 등의 표시가 따라 붙는다. 그리고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해 낸 팀에 대해 ‘제조본부 전설1호’ ‘불가사 탄 시리즈’의 영예가 수여된다.
하이닉스반도체 제조본부는 불가사(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본부로 불린다. 그만한 자격도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한 개 팹에서 월 16만장 생산’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고 지금도 경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이 바로 회의실 벽을 덮고 있는 ‘숫자’에 있다. 벽 귀퉁이에는 ‘(2007년) 영업이익 3.01조 결코 꿈이 아닙니다’라는 정말 꿈 같은 내부 목표를 발견할 수 있다.
메모리제조본부 제조혁신팀 권형민 과장은 “제조본부 이외의 외부에는 이야기하지 않는 우리들 마음속의 목표”라면서도 “제조본부는 지난 2004년 총 24가지 세계 최고 아이템을 선정해 하나씩 실현해 왔기 때문에 그 기세를 몰아 다소 무모해 보이는 ‘영업이익 3조’를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본부 P1E팀 임상만 차장은 “제조본부는 모두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숫자(목표)를 달성하면서 ‘하이닉스 재건 신화’를 만들어 냈다고 자부한다”며 “일단 팀별로 잡은 목표는 하향조정이 불가능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한 대체방안을 제시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목표는 개인을 옥죄는 숫자가 아니라 제조본부 전체가 하나가 돼 뚫어야 하는 공동의 몫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목표를 설정해 성과를 거두면 개인의 영예가 되고, 목표 도달에 혐겨워하더라도 그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제조본부장실과 회의실은 ‘이동식’이라는 점이다. 언제든지 가장 큰 난제에 부딪힌 제조라인 근처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난제가 풀릴 때까지 제조본부장과 핵심 기술인력들의 밤샘이 이어진다. 임 차장은 “과거 M4라인 수율이 좋지 않을 때 본부장실이 3개월간 M4라인에 긴급 이동했고, 문제가 풀린 뒤에는 또 다른 라인으로 이동한 적이 있다”며 “제조본부의 핵심경쟁력은 현장의 상황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는 순발력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조본부장 회의실을 나와 제조현장으로 이동하는 수백미터 길이의 복도. 제조본부는 이 복도의 벽도 그냥 두지 않고 있다. ‘최고주의의 거리’ ‘창조의 거리’ 등으로 조성돼 세계 최고의 신기록 또는 창조적 기록을 세운 자랑스러운 임직원들의 얼굴과 공적을 전시해 놓고 있다.
하이닉스 제조본부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하이닉스 혁신의 선봉본부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어느 경쟁사도 흉내 낼 수 없는 세계 최저 수준의 웨이퍼 제조원가를 확보했고, 그 성과가 2006년 세계 최고의 영업률 달성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주변에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제조본부는 하이닉스 전체 임직원 약 1만5000명 가운데 1만2000명 정도가 종사하고 있는 하이닉스 최대 본부다. 이 본부의 사령관인 최진석 제조본부장은 “어려웠던 시절, 경쟁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투자만이 가능했기 때문에 ‘최소 투자로 최고 캐파 업’을 이뤄내야 하는 현실이 지금의 강한 제조본부를 만들어 냈다”며 “하이닉스는 2년 연속 세계 최고의 성장률로 세계 7위의 반도체 업체로 우뚝 선 만큼, 이제 불가사 본부는 2012년 세계 3대 반도체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혁신 2기’를 선포하고 불가사 본부 식구들과 함께 다시 한번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생산라인에서 만난 한 여사원의 자신감 어린 목소리는 승승장구하는 제조본부의 분위기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때 국가의 경제를 좀 먹는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 회사를 이제는 부러워할 정도로 변화시켰습니다. 바로 제가요! 그런데 세계 1등이라고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경쟁사보다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etnews.co.kr 사진=윤성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