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IT기업 "지역업체 역차별 서러워"

 부산에서 6년째 웹디자인 회사 닥터디자인을 운영 중인 양정문 사장은 지난해 9월 서울에 지사 형태의 사무소를 차렸다. 서울에 별도의 사무실이 필요할 정도로 사세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부산 소재 기업이라는, 즉 ‘지방기업’ 이미지를 없애고 싶어서였다. “부산 기업이라는 이유로 입찰에서 떨어진 후 서울에 사무소 개설을 결심했다”고 양 사장은 말했다.

 사연은 이렇다. 닥터디자인은 작년 초 6000만원 규모의 부산 소재 H사 홈페이지 구축 사업의 입찰에 참가했다. H사를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사업은 입찰 경쟁을 벌인 서울 소재 기업에 돌아갔다. “나중에 들으니 그 회사 사장과 간부들이 모여 ‘그래도 서울 기업이 믿을 만하고 실력이 좋지 않겠냐’며 결국 서울 소재 기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같은 지역에 있는 중소기업을 배려해야 할 덩치 큰 기업이 되레 차별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황당했다.” 양 사장은 아직까지 서운한 감정이 남은 듯 “서울에 사무소를 만든 후 오히려 서울 쪽 물량이 늘어 이참에 아예 서울로 회사를 옮길까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역에 있으면 지방 촌기업?’=지역 소재 중소기업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 또는 무시 경향이 어제, 오늘의 일이거나 특정 지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보유 기술로 경쟁해야 할 IT분야조차 지역 소재 기업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그 같은 차별 행위를 지역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부산 소재 디지털 콘텐츠 개발사 팜캐스트의 김수진 사장은 “지역 IT기업에 대해서 마치 지방대학 출신을 은연 중에 무시하는 것처럼 은근히 깔보거나 기술력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지역 기업으로서 특혜를 얻고자 할 때 외에는 지역 소재 기업이라는 사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같은 값이면 서울 등 수도권 기업을 선호하는 이 같은 차별 경향은 지역 IT기업의 입지를 갈수록 좁혀 놓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역 IT기업은 사업 입찰 때 붙는 참가조건을 충족시킬 만한 수주 실적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닥터디자인의 사례처럼 몇 천만원 단위의 사업에서 조차 지역 기업을 꺼리는 상황에서 1억원 이상 규모의 사업은 두말할 나위 없고, 10억원 이상 사업에 대한 입찰 자체는 지역 기업으로서는 꿈 같은 일이다. 이미 크고 작은 입찰 경쟁에서 제외되거나 탈락을 반복해 수주 경력을 쌓을 틈도 없이 또다시 새로운 사업 입찰 때마다 참가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 IT기업 수주율 10%에도 못 미쳐=부산과 대구, 광주 지역에서 공개 입찰에 붙여진 크고 작은 IT 관련 발주사업 중 지역 IT기업의 수주율은 건수로 30% 미만, 금액으로는 1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관련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지역 모 구청의 경우 2000만원 안팎의 사업비가 드는 홈페이지 구축사업을 서울 소재 기업에 맡기려다가 입찰이 없자 생색내듯 지역 IT기업에 맡겼다. 광주 시스템통합(SI) 사업의 경우 대부분 수도권 기업이 따냈다. 지난해 광주도시철도 1호선 데이터전송시스템 사업에 참여한 지역 IT기업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지방 소재 대기업 임원은 “입찰 참가조건으로 과거 사업수주 실적을 원하는 것은 관행이다.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지역 기업이 참가를 못한 것일 뿐 지역 기업을 차별한 것은 아니다”며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건을 걸고, 또 이에 적당한 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 기업 할당제’ 등 조례 제정 필요=과거 수주실적 대신 현재 갖고 있는 기술로 평가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 IT기업은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지역 IT기업의 주장은 이와 다른 차원이다. 같은 조건이면 지역 기업에 사업을 맡기고, 또 미세한 차이라도 지역 기업에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 대기업은 사기업이라 그렇다 해도 지자체와 지역 공사마저 지역 기업을 못믿고 사업 발주를 꺼리고 있다는 점에 지역 IT기업의 응어리진 분노가 집중된다.

 한 지역 소재 IT기업 사장은 “공공기관이 공공연하게 지역 IT기업을 차별하는데 어떻게 지역 IT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냐”며 “지역을 등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역 기업을 챙기고 배려하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병준 전 부산정보기술협회장은 “지자체에서 지역 산업 발전을 위한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지역 IT기업이 참여를 통해 경험과 경쟁력을 쌓을 수 있는 사업은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며 “공공발주 사업의 일정 비율을 지역 기업에 주는 지역 할당제나 일정 금액 이하의 공공 물량을 지역 기업이 맡을 수 있는 방안을 지방조례로 제도화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국팀>

 

<◆서울사무소 설립은 지역 IT기업 생존 방안?

 ‘지역에서 생존하려면 서울사무소를 내야 한다?’

 지역 중소 IT기업들이 지역 대기업 및 공공기관의 차별 대우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턱없이 낮은 사업비로 입찰에 참가한 후 이를 수주해 자사 실적 쌓기용으로 활용하거나 사업 담당자 및 책임자와의 접촉 기회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현재의 수주 실적이 돈이 안 된다 해도 앞으로 엇비슷한 새로운 사업에 입찰할 때는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에 손쉬운 입찰 참가는 물론이고 사업 수주도 용이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최소한의 입찰 조건에 들거나 공개 입찰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지역 IT기업에 대한 막연한 불신으로 경쟁 과정에서 아예 제외되는 경우에는 서울 지역에 비싼 임대료를 물고서라도 사무소를 운영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불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서울사무소를 내는 것은 지방 IT업계에는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일이다.

 부산의 경우 기업 규모를 떠나 IT·CT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 중 10%가량이 서울에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있거나 서울 기업과 제휴를 통해 연고지를 마련해놓고 있다. 대구 지역의 경우 연 10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의 대다수가 서울지역에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소재 IT기업 D사장은 “명함에 서울에도 사무소가 있다는 것을 새겨넣어 고객사에 알리고 싶은데 허위로 그리할 수 없어서 실제 사무소를 낼 수밖에 없었다”며 “어떤 식으로든 서울에 연고가 있어야 대우을 받거나 최소한 차별받지 않는 것이 지역 IT기업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창원의 남다른 지역기업 사랑

 창원시의 지역기업 사랑은 남다르다.

 지난 20일 창원시(시장 박완수)는 지역 내 CJ CGV 창원점과 ‘창원시-CJ CGV 창원점 제휴 협약식’을 가졌다. 협약은 창원 소재 기업 근로자와 기업인에게 사원증 제시만으로 영화관람료를 2000원 할인해 주고, 동반 1인까지 1000원의 할인 혜택을 준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할인 금액만으로 따지면 그리 큰 혜택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지역 상인의 협조를 이끌어내 창원시의 기업사랑운동이 단지 공기관 차원의 활동이 아닌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시 전체의 운동으로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처럼 지역 기업을 우대하고 섬세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창원의 기업사랑운동은 이미 많은 지역에 알려졌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지목돼 왔다. 선전용에 그치거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타 지자체와 달리 창원시의 지역 기업사랑운동은 지역 근로자와 경영인 모두에게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자연스럽게 근로 의욕은 높아졌고, 기업 생산성 향상을 가져와 창원시 지방재정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창원시는 기업사랑운동을 시작한 지난 2005년 한 해에만 3차례의 조례 제정을 통해 지역 기업에 대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정착시켰다. 조례 제정 외에도 지난해 초에는 ‘지역 기업인과 근로인 예우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모든 지역 기업 지원행사의 표준지침으로 삼고 있다.

 창원 소재 중소기업은 “창원만큼 기업하기 좋은 도시는 없다”고 말한다.

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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