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5)

Photo Image
지난해 영국에서 콜럼비아대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며 지난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맨 왼쪽이 필자.

⑤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박사 과정이 끝나갈 무렵, 논문 심사에서 일이 생겼다. 심사위원 가운데 한 교수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보통은 심사위원이 교체되는데, 이렇게 되면 새로운 위원의 지적에 맞게 논문을 다시 작업해야 한다. 눈앞이 컴컴해지는 듯 했다.

 이 때 박사학위 위원회 의장이자, 지도교수인 리처드 존슨 교수가 나를 불렀다. 사람 좋기로 유명했던 존슨 교수는 “너와 친한 사이프레드 교수께 심사위원회 위원이 되어 줄지 여쭤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사이프레드 교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너가 원하면 심사위원으로 교체임명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뛸듯이 기뻤다. 사이프레드 교수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심사위원이 되어달라고 하니, 본인은 존슨 교수가 별로이지만 나를 위해 심사위원이 되어 주겠다고 했다. 이후 사이프레드 교수는 논문을 다 읽고 나서 “질문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지만 너를 위해 그냥 넘어간다”고 했다.

 사이프레드 교수는 박사과정에 재학하는 동안 워싱톤주 투입산출표(Input-Output Table)를 작성하면서 친하게 된 교수이다. 매일 만나 자료를 정리하고, 계산해서 제출하면 사이프레드 교수가 최종적으로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곤 했다.

 하루는 사이프레드 교수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너에게 한 달 연구비를 얼마나 주느냐”였다. 그래서 내가 한 달에 얼마씩을 연구비로 가져간다고 했더니, 크게 웃으며 “자네는 너무 열심히 일하는구만. 오늘은 다 잊어버리고 쉬게” 하면서 나를 연구실에서 그냥 내보낸 적이 있다.

 이같이 사이프레드 교수와 친교가 돈독했으므로 내가 박사학위 논문 심사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는 싫은 사람이지만 같이 일하겠다고 선뜻 응낙을 해 준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내 학위 논문심사는 단 2시간만에 끝났다.

 이 예에서 생각나는 것은 박사과정 재학시절에 성실히 연구업무에 임한 것이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워싱톤 주 투입산출표 작성 프로젝트에서 재미도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성실히 노력한 것이 박사학위에도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사이프레드 교수와는 귀국 후에도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77년경에는 본인이 한국에서 가르치고 싶다는 희망에 따라 풀브라이트 교수로 한국에 초청받아 서울에서 2년간 같이 살기도 했다. 이 기간 사이프레드 교수가 환갑을 맞아 울긋불긋한 과자를 쌓아 올려 환갑상을 차려드리고 큰 절을 하니, 그 기뻐하시던 표정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사이프레드 교수는 90살이 된 지금도 워싱톤주와 오레곤주 경계의 작은 동네에서 자가운전을 하며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다고 들었다.

skwak@snu.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