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초겨울, 대학 졸업을 앞둔 한 청년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올림픽대교 위에 섰다.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도 한 순간, 한강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주식시장. 수십억, 수백억원대 부호를 꿈꾸며 수많은 이들이 도전하지만 본전은 커녕 빚더미에 올라 인생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증권포털 ‘슈어넷’에서 필명으로 실전투자클럽을 운영중인 두 ‘선수’들을 통해 트레이더(전업 투자자)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투자 입문기=슈어넷의 증권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피터백(본명 백성욱·37)은 다행히 당시 한강을 뒤로 했다. 짧은 기간에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머니로부터 어렵사리 지원받은 4000만원으로 선물 투자에 나섰던 이 ‘초보’에게 시장은 냉혹했다. 자신의 방을 차트로 도배하다시피하며 준비했지만 결과는 ‘깡통’이었다. 자신감만으로는 되지 않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그때의 실패는 약이 됐다. 그는 “이후로 10% 손실이 발생하면 무조건 손절매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슈어넷에 합류한 콜럼버스(본명 김성진·27)의 최종 학력은 대학 1년이다. 행정학과룰 중퇴한 그는 군 입대 후 우연히 읽은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감명받아 트레이더가 되기로 결심하고 복학하지 않았다. 그는 노트북을 사기 위해 모아뒀던 용돈을 밑천 삼아 투자를 시작했다. 역시 천당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여러번 거듭하며 현재 자신만의 투자원칙을 다듬어가는 중이다.
◇ ‘정도’만이 살 길=트레이더의 생활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간혹 수백억원대의 자산을 굴리는 재야 고수들의 이름이 들려오지만 이는 몇몇에 불과하다. 콜롬버스가 슈어넷에 합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투자 수익은 변동성이 많기 때문에 이와는 별도로 내 생활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정적인 급여가 필요했다”며 “안전장치가 없을 경우 결국에는 무리한 투자를 일삼게 된다”고 설명했다.
두 선수의 투자 성적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슈어넷 실전투자클럽을 통해 공개된 그들의 누적수익률은 각각 47%(피터백), 22%(콜럼버스)다. 이들이 일반 투자자에게 전하는 투자원칙은 간결하다. 피터백은 “마음을 다스려야 성공할 수 있다”며 “10% 손절매 원칙만 유지한다면 적어도 패자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콜롬버스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좋은 회사라고 해도 결국에는 자신이 사업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해야 한다”며 ‘묻지마 투자’를 경고했다.
이호준기자@전자신문, newlevel@
◇재야 고수의 세계
제도권에 진입한 ‘압구정동 미꾸라지’(윤강로 KR투자 대표)를 비롯해 ‘목포 세발낙지’ ‘홍콩물고기’ 등 선물·옵션 투자를 통해 알려진 인물이 많다. 지난 2005년말 열린 한 증권사 투자대회에서는 투자경력 19년의 트레이더가 800%에 가까운 경이적인 수익률로 우승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이른바 ‘대박’을 거두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한때 성공했더라도 그 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쇄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점에서 위험하지만,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게 트레이더들의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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