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대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중천’. 정우성과 김태희라는 꽃미남 꽃미녀의 조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시사회에 들어갔지만 영화는 너무나 지루했다. 두 주연 배우의 대사 발성은 여전히 어눌하고 서툴렀다. 감정의 리듬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작품의 기본 출발이 되는 시나리오가 안 좋았다. 특징은 있었지만 완성도는 떨어졌다. 영화의 제목이 되는 중천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곧바로 저승으로 가지 않고 환생을 기다리며 49일 동안 머무는 공간을 뜻한다. 영화적으로는 매우 새로운 소재이고 매혹적인 공간이다. 신라 말기 왕실의 퇴마무사단 처용대는 왕실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모두 몰살되지만 유일하게 살아난 사람이 처용대의 제일무사 이곽(정우성 분)이다. 원혼을 가진 귀신들의 반란으로 현실계와 분리된 중천의 공간외곽이 깨지면서 이곽은 중천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대신해 죽은 연인 소화(김태희 분)를 만난다. 그러나 소화는 이곽을 알아보지 못한다. 죽은 자들은 살아생전의 모든 기억이 다 지워지기 때문이다. 소화는 중천을 지키는 천인이라는 신분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대신해 중천을 다스리고 원귀들의 침입으로부터 중천을 보호해야 한다. 소화는 중천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영체 목걸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원귀들이 소화를 노린다. 이곽은 사랑하는 소화를 지키기 위해 이승의 퇴마무사들과 중천의 원귀가 된 예전 처용대의 보스 반추(허준호 분)와 싸워야 한다. 팬터지 영화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갖추고 출발한 ‘중천’은 그러나 내러티브가 매끄럽게 풀리지 않았다. 허구로 설정한 이야기들이 관객들의 머리 속에 차분히 자라 잡는 게 아니라 뿔뿔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으며 각각의 에피소드들의 연결도 단절감이 있다. 하나의 상황이 끝나면 다음 상황이 시작되는 형식이다. 그것들이 상호 연관되어 긴밀하고 리드미컬한 운동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다. 전체의 40% 이상이 디지털 작업으로 변화되어 컴퓨터 그래픽이 활용되었고, 750컷이라는 막대한 분량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컴퓨터 그래픽 화면으로 만들어졌다. 또 모션 캡처를 이용한 디지털 액터의 활용 등으로 시각적 쾌감은 뛰어나게 만들어졌다. 영혼의 상처를 치료하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거대한 나무 위령수라든가, 다음 생애에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영혼들이 기원하는 붉은 꽃잎이 산처럼 쌓여 있는 참선관, 현실적 공간과 뒤섞여서 새롭게 중천의 공간으로 탄생한 중국 각지의 명소들은 동양적 팬터지의 매혹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세익스피어의 ‘맥베드’를 동양적 공간으로 옮겨 놓은 구로자와 아끼라의 ‘란’이라든가 장예모의 ‘영웅’, ‘연인’ 등에서 의상을 담당하여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백전노장 에미 와다의 의상은 가장 뛰어나다. 소화가 입고 있는 흰 옷은 허리 부분에 고귀한 장식이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는 기품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소화의 연적이며 이곽을 사랑하는 처용대 여자 무사 효(소이현 분)가 입고 있는 검정색 바탕의 강렬한 핏빛 붉은 색 의상도 질투심으로 이글거리는 효의 강렬한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뛰어나게 형상화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상이나 세트,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야기의 존재다. 이야기의 부재가 아니라 이야기의 넘침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효과적으로 교통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곽과 소화의 사랑은 체감도 있게 관객들을 자극시키지 못한다. 현실감 없는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가 화려한 시각적 볼거리와 함께 펼쳐지는 것은 얼마나 부조화스러운가. 동양적 팬터지의 구현이라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또 시각적인 부분에서 일정한 성취까지 이루어냈지만 그러나 매끄러운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함으로써 이 모든 것들이 겉돌게 만들었다. 역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러티브다. 내러티브가 아니라 이미지만으로 승부를 걸 수도 있지만, 그러나 ‘중천’은 내러티브에 토대를 두고 설정된 영화다. 토대 자체가 튼튼하지 못함으로써 그 위에 지워진 거대한 누각은 위태롭게 흔들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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