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산업에 새 날개를 달자](상)­투자 유도 정책의 틀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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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넘게 드라마틱한 성장세를 누려온 통신산업이 주춤했다. 내수 포화로 매출 정체가 뚜렷한데 새 성장엔진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당장 결실을 거두기 힘들다. 통신사업자들은 투자를 어디에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이러다간 ‘투자→후방산업 활성화와 이용자 편익 증진→매출 증대→기술 혁신→재투자’이라는 통신시장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통신산업의 재도약없이 IT코리아·수출강국·국민소득 3만불은 공염불이다. 통신사업자에 새 날개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날개는 규제완화와 글로벌 경쟁력이다. <편집자 주>

지난달 초 노준형 정통부 장관은 통신업계 CEO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노장관은 내년 투자를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해줄 것을 주문했다. 통신투자가 활발해져야 후방산업계에도 활력이 되고 기술혁신,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IT산업 구조가 튼실해진다는 것이다. 실제 정통부 관료들은 통신업계 임원들을 만날때마다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한다.

그러나 12월 현재 통신업계의 내년 투자는 올해 7조원대보다 줄어든 6조원대다. 올해 3조원을 투자한 KT는 최근 내년도 투자액을 2조8000억원으로 확정했다. 그나마 IPTV나 콘텐츠 투자로 책정한 2900억원은 법제화 등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며 와이브로 투자도 올해보다 절반 이상 줄였다. 남중수 KT사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투자를 매년 늘릴 수는 없다”며 “KT의 투자는 세계 통신업체와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투자계획을 내년 1월에 발표할 예정이지만 1조6000억원인 올해 규모를 밑돌 게 확실시된다. 이 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정통부 정책 방향이 요금인하 등 소비자 혜택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통신업계에 부담을 주지만 그 자체로는 어쩔 수 없다”라면서도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투자까지 해야하니 고민스럽다”라고 말했다. 시장이 보이면 남이 말려도 알아서 투자하겠지만 투자를 위한 투자, 보이기 위한 투자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규제기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통신사업자들은 정부의 투자 압박을 가급적 수용하려 한다. 하지만 국내 통신 양대 산맥의 이 같은 입장은 정통부의 투자 유도 정책이 이젠 한계에 봉착했음을 뜻한다.

지난 7월 LG텔레콤이 투자비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동기식 IMT-2000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이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미지 훼손, 사장 교체, 미납 출연금 납부 등도 감수했다.

그동안 통신사업자의 공격적인 설비투자는 PCS, IMT2000과 같은 굵직굵직한 사업권을 얻은 댓가의 산물이다. 시장 참여할 권리를 준 정부가 투자 규모를 강제하는 것은 당연시됐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사업자에게 줄 떡이 줄어들었다. 문제는 정부의 투자유도 정책이 더 이상 진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떡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거대 신규 사업권은 없지만 기존 서비스나 다른 사업과 접목한 이른바 융합 서비스가 있다. 유선과 무선 등 통신내 융합은 물론 방송, 금융 등 다른 산업과의 융합 서비스다. 통신사업자들도 정체의 돌파구를 여기에서 찾는다.

하지만 규제 장벽이 가로막는다. 규제기관까지 다르다.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쉽게 풀 문제는 아니지만 정부가 대국적으로 나서면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이 미리 예견됐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며 “통신사업자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히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사업자가 애초 계획대로 투자하라고만 얘기할 뿐이며 시장 흐름에 맞춰 서비스를 하도록 시기까지 배려해준다”라고 말했다. 정통부는 실제로 동기식 사업권을 반납한 LG텔레콤엔 ‘리비전A’ 사업을 허용했다. 하지만 정부는 통신 규제 개선과 다른 규제 기관과의 정책 조율 문제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그러는 사이 통신사업자들은 정작 투자하고 싶은 곳엔 못하고, 그렇지 않은 분야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투자하거나 시늉이라도 내야 한다. 벌써 수년째 되풀이하는 정부와 통신사업자의 숨바꼭질이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업계는 "마땅한 투자처는 안보이고…"

"정말 투자하고 싶습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투자할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근데 어디다 투자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발 좀 알려주세요."(KT 고위 임원)

“시장이 보이면 남이 누가 말려도 알아서 투자합니다. 시장도 안보이는데 무조건 투자하라고 억지로 등떠밀면 누가 흔쾌히 하겠습니까. 참 난감합니다.”(SK텔레콤 관계자)

정부의 투자유도에 대한 통신업계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투자할 곳, 시장을 못찾겠으니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과도한 투자를 강제하고 있으니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더욱 엄밀하게 말하면 시장도 보이지만 시장을 만들 기회가 막혀있어 적극 나서기가 힘들다는 것.

‘엄살’이라고 보기에는 사실 신규 통신서비스 진척 상황이 너무 지지부진하다. 업계 준비부족과 기술상의 문제도 있을 수 있지만 규제로 인한 위축,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

IPTV의 불투명한 법제화로 상용화 시기를 예측할 수없다. 위성DMB의 지상파 재전송이나 지상파DMB의 유료화 등도 사실상 막혔다. 와이브로는 음성을 싣는 문제가 걸려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할권을 놓고 정부간 소모적인 공방만 벌어진다. 방송계쪽이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지만 정통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다.

KT 관계자는 “IPTV 법제화를 당장 한다고 해도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가능한데 이것도 확실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KT가 할 수 있는 건 와이브로 전국망 구축 투자를 줄이는 것 뿐이다. SK텔레콤 역시 와이브로 등 내년 시장 환경이 어떻게 전개될 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으니 그저 관망할 수 밖에 없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정통부는 투자 이끌어낼 묘수 찾기 부심

정보통신부는 투자유도를 위한 새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엔 인식을 같이한다. 과거처럼 정부가 사업권을 부여하고, 투자 규모를 정하는 방식이 더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요금과 서비스 인허가 등 다양한 규제 수단을 투자 독려에 이용하기도 하지만 자칫 규제의 일관성을 잃기 쉽다. 

사업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새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정통부에게 과제가 됐다. 사업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등이다. IPTV가 단적인 예다. 법제화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사업자들은 마음놓고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정통부는 새 규제 로드맵을 준비중이다. 핵심은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이다. 하지만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이 서로 부딪치는 부분이 있으며, 다른 규제기관과도 조율해야 할 문제도 있다. 그 균형점을 찾기 힘들다고 정통부 관료들은 토로한다.

현실적으로 투자여력이 있는 사업자는 사실상 지배적 사업자들이다. 어떻게든 이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규제 완화에 무게중심을 둘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특정 사업자를 편드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정통부도 고민스럽다. 

거꾸로 경쟁을 촉진하려면 지배적 사업자의 지배력을 억제해야 한다. 지배력 억제는 곧 투자감소와 연결된다. 사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조율이 쉽지 않다. 염용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위원은 “경쟁이 지나치게 활성화하면 투자가 줄어들고, 규제를 완화하면 경쟁이 저해된다”라고 말했다.

정통부 관계자는 “경쟁을 촉진시키려면 지배적 사업자의 지배력 남용을 억제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며 “시장을 정확히 판단해야 해 투자유도와 경쟁강화를 잘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건호기자@전자신문, wing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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