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텐츠 시대가 활짝 열렸다. 물론 이런 시대는 정보통신의 발달을 딛고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의 문화적 소통이 구비전달 체계에서 인쇄, 미디어를 거쳐 디지털 시대로 발전하면서 생각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세상에 등장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사용자제작콘텐츠(UCC)가 이런 현상을 대변한다.
최초의 소통은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 전달하던 UCC 또는 UGC(User Generated Contents) 그 자체였다. 이후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 전달되는 ECC(Expert Created Contents)와 PCC(Professional Created Contents) 시대를 거쳐서 다시 UCC로 돌아오는 상황이다. 전문성이 아닌 문화적 동화와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 따른 일종의 회귀현상이다. 디지털 사회에서도 이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최초로 주창한 마크 와이저는 가장 우수한 기술은 사라진다고 했고 현대 최고의 산업 지도자인 빌 게이츠도 컴퓨터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것은 기술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기술로서가 아니라 사람의 삶에 융화돼 한 분야처럼 작동하게 되고, 지금의 최고 기술이라 하는 컴퓨터도 다양한 인간의 문화와 생활에 녹아들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발달의 궁극적인 목표가 삶의 질을 높이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제 기술은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즉 감성과 창의성, 함께 이루어내는 문화가 어떤 것인지에 기술발달이 그 초점을 맞춰야 하는 단계고 오늘날의 사회현상도 그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정보와 콘텐츠에 주안해 이것을 더욱 창의성 있게 만들어 인간의 감성에 맞게 전달하는 방법에 기술발달과 마케팅 전략을 집중하는 것이 더 성공적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인간중심, 문화중심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방증다.
21세기 산업의 최고 격전장은 문화산업과 융합기술 부문이 될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예측은 거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 국이 융합기술 정책을 세우고 개발을 추진하면서 그 결과가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사회의 중요한 해결과제로 회자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융합시대의 경쟁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시작에 불과하다. 융합의 기본을 판단하는 것이 미래 경쟁의 중요요소가 될 것이다. 새롭게 형성되는 패러다임이나 개별 영역에서 다루었던 것이 융합 후에 어떻게 조율될지도 중요하지만 외적 문제 이전에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를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면 융합의 경쟁력이 반감될 수도 있다.
방송은 공공성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기반이, 통신은 개별성을 기본으로 하는 상호성이 그 근간이다. 그러나 방송의 즉시성과 양방향성, 통신의 문화적 영역 확대는 그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기에 이른 상황이다. 통·방융합에서 조직이나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그런데 기본이 되는 콘텐츠의 경쟁력 논의를 배제한 채 단순한 힘이나 조직논리에 따라 결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문화적인 정체성과 경쟁력은 미디어나 전달매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사회적 환경, 창의성과 감성을 바탕으로 유구한 시간을 두고 형성되면서 변모해 간다. 문화적 산실인 기구와 사람이 경쟁력을 높여가고 기술과 미디어가 드러나지 않게 협력해가는 것이 융합사회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결국 융합 의사결정은 기본으로의 회귀나 이에 충실한 방향으로 해 나가야 한다. 이번 통·방융합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에 대한 의사결정에서 문화적 경쟁력을 기본으로 삼기를 기대한다.
◆설기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인력기술본부장 snow@kocc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