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SR-III 시스템이 고체 3단 로켓에서 1단은 고체로켓으로 2단은 액체 로켓으로 수정됐지만 2단 로켓으로 포함될 경우 액체 로켓의 규모가 아주 작아질뿐만 아니라 적은 추진기관연구팀의 인력과 한정된 예산으로 짧은 기간에 고체로켓과 액체로켓에 필요한 두 가지 종류의 엔진을 동시에 개발한다는 것은 당시 우리의 실정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남의 도움이나 충분한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4∼5년 안에 과학 로켓에 쓸만한 액체 엔진을 순수하게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추진기관 팀장인 필자가 제안해 국내에서는 새로운 액체 추진제 로켓을 개발하는 데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고,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정부에서 액체 로켓 아이디어를 처음 낸 필자가 책임지고 KSR-III 개발 계획을 세우도록 도와줬다.
액체 로켓만 KSR-III를 개발하는 새로운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1997년 12월 24일 과학기술부에서 IMF상태로 미래를 예측할 수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580억원짜리 액체 과학로켓 개발 계획을 승인해 줬다. KSR-III 개발사업은 KSR-II보다 연구비가 10배 이상 늘어난 대형연구개발 사업이었다. 사업은 시작되었지만 1차년도 개발예산은 25억원이었다. 그리고 IMF 때문에 2차년도와 3차년도 개발예산도 동결됐다. 정부에서 받는 연구비로 연구원 인건비에 쓰고 나면 실제로 로켓개발에는 쓸 돈이 없었다.
연구비 지원이 계획대로 안 되자 주변에서는 KSR-III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인공위성발사를 시도했다. 필자는 로켓엔진 시험시설건설 장소를 찾아보고 연구소에 돌아와서 이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였구나! 이제 세상이 좀 시끄러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위성 발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우리나라도 빨리 인공위성을 국내에서 발사하자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2005년까지 우리 위성을 우리 로켓으로 우리 땅에서 발사하기로 우주개발 계획을 앞당겼다. 액체 로켓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KSR-III의 개발 예산도 580억원에서 780억원으로 증액됐다. 뿐만 아니라 98년도 개발예산도 198억원으로 증액됐다.
1999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액체로켓개발이 시작됐다. 그해 9월 무궁화 3호 발사를 참관하고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에 들려 KSR-III에 사용할 액체로켓의 핵심부품 구입을 협의했다. 모두들 관심있어 하였으나 실제로 부품을 해외에서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국제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로켓부품의 해외 구입이 통제받고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MTCR 가입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었고 필자도 연구소 대표로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협상의 진전이 없어 언제 우리가 회원국이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개발방법을 바꾸어 액체 로켓의 모든 부품을 국내에서 개발하기로 했다. 액체 로켓의 개발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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