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라이힝(舶來品)이라는 일본어가 있다. 이는 배로 실어온 수입품이라는 의미로 에도막부 말기 요코하마가 개항되어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시절에 등장한 말이다.
에도 막부 말기는 일본이 서구 열강의 개항 압력에 고심하던 시기로 그 당시 미국의 구로부네(흑선, 미국의 군함)는 에도성(지금의 황궁) 앞까지 거슬러 올라 와 대포로 위협하던 때였다. 이런 일본과 서구 열강의 군사력의 차이는 경제력의 차이와 직결되어 있어 당시 일본인들은 서구의 문물에 대한 동경과 애착으로 물 건너 온 상품을 하쿠라이힝으로 부르고 소중히 했다.
지금도 이런 하쿠라이힝에 대한 신화는 경제대국 일본에 남아 있다. 일본에서 부의 상징은 도요타의 크라운이나 렉서스가 아닌 벤츠나 BMW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고급차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는 렉서스도 벤츠라는 하쿠라이힝의 신화를 꺽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에도 하쿠라이힝에 대한 뿌리는 깊다. 한국전쟁 이후 들어온 미제 구리무나 초코렛으로 대변되는 미국 문물에 대한 신앙은 50년이 지나고서야 조금씩 극복되어 고 있다.
물론 아직 일본에 비해 경제대국이 아닌 한국에 이런 하쿠라이힝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자동차나 가전제품이 아닌 IT에서, 그것도 한국이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온라인 콘텐츠 분야에서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올 초부터 웹2.0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웹 2.0이라는 하쿠라이힝에 대한 컨퍼런스는 개발자들로 미어지고 있다. 이는 온라인게임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 하다. 어느 게임사가 웹2.0을 도입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웹2.0이라는 개념이 한국의 입장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도, 특히 온라인게임의 경우는 이미 탄생에서부터 그 철학을 구현해 왔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웹2.0에서 말하는 많은 부분은 한국의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이 구현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온라인게임의 기본철학은 개방성이다. 개방성은 유저들이 게임의 제작과 진화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전에 콘솔이나 PC게임에서 게임은 하나의 예술로 이 제작 과정에 유저들이 참여(간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경이었다.
콘솔이나 PC게임에서 유저의 의견은 참고용일 뿐이었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에서 유저는 GM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또 실제로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고, 다른 유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게임의 확장과 진화에 직접 참여한다. 이런 온라인게임의 글로벌 산업화의 주역인 한국에서 웹2.0이 코페르닉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인 양 말하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 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웹2.0적인 개방과 공유의 철학이 한국의 온라인게임계에선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제작에 대한 개방성과 콘텐츠의 결과물에 대한 공유라는 철학이 한국의 온라인게임에서는 실현되고 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온라인게임 분야의 개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런 철학을 구현한 세컨드 라이프 라는 게임이 등장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컨드 라이프는 유저에 의해 생성된 아바타와 아이템의 저작권을 유저왔 부여해 유저들 간의 거래를 허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실험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와는 별도로, 왜 이러한 게임이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차세대 게임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대해 한국 개발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지 자문해 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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