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의 공동 개발 프로젝트가 급류를 타고 있지만, 최근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엔저’ 영향에 따라 국내업체들의 일본 시장 진출엔 빨간등이 켜졌다. 이미 국내 온라인 게임업계의 새로운 보고(寶庫)로 급부상한 일본이지만, 원 대 엔화 환율이 급락,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부터 진행돼 온 엔화 약세 현상은 최근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마의 800원(100엔 대비)벽이 위협받는 등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엔화 환율이 무려 10% 이상 급락했다. 일본에 로열티 배분(RS) 방식으로 온라인게임을 수출한 업체라면 앉아서 적지않이 매출이 줄어든 셈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이같은 엔화 약세 현상이 장기화된다면, 업계 전체의 일본 진출에 적지않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연히 ‘종주국’ 대한민국의 온라인 게임 수출 전선에도 점차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엔환율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 반해 달러 대 일본 엔화 환율은 일본의 금리인상에 대한 불투명성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 18일 코트라가 발표한 ‘환율변동에 따른 한일 수출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미 달러 대비 원화 및 엔화 환율의 ‘탈동조화’로 한국 제품의 대일 수출 경쟁력이 급격히 하락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계 무대에서 국내 기업들의 가격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며, 무엇보다 대일 수출 전선에 빨간등이 켜졌다. 게임이라고 결코 예외일 수는 없는 법. 환율 하락에 따른 로열티 수입액이 적지않이 순감한 상태다. 특히 국내 게임업계 수출 1위 국가가 다름아닌 일본이란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무엇보다 엔화 환율 급락에 따른 일본 수출액의 자연 감소분을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일본의 비중 탓이다. 문화부가 발간한 ‘2006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국내 게임 수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42.6%로 압도적으로 1위이다. 2004년 39.5%로 1위였던 중국은 20.8%로 크게 낮아졌으며 17.9%로 3위였던 대만은 9.5%로 떨어졌다.
게임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의 경우 일본의 비중은 무려 43.4%에 달한다. 최근 본격적으로 물꼬가 트인 모바일게임도 일본이 31.3%로 중국(25.5%), 유럽(20.5%), 미국(20.2%) 등을 큰 폭으로 앞선다. 특히 올들어 블록버스터급 국내 온라인게임들이 줄줄이 일본 상용화에 나서 일본의 비중은 작년보다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이에따라 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타격이 적지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일본 수출 비중이 만만치않은 기업은 ‘라그나로크’와 ‘한게임’으로 일본 시장을 평정한 그라비티와 NHN을 필두로 ‘붉은보석’ 등으로 빅히트를 기록중인 삼성전자, 넥슨, 엠게임, 한빛소프트, 엔씨소프트 등이 손꼽힌다.
YNK코리아 등 일본 시장 공략에 고삐를 당긴 기업 역시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의 온라인게임 시장 자체가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는데다 캐릭터 등 다양한 수익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어 당장에 업계에 미치는 체감 지수는 생각만큼 그리 크지 않아보이지만, ‘라그나로크’ 등 전체적인 지표가 이미 정점을 찍은 게임의 경우 환차손에 따른 수입 감소 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붉은보석’으로 일본시장에서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L&K로직스의 남택원사장은 “엔화로 받은 로열티를 원화로 바꿔 들여오기 때문에 환차손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환율 하락에 못지않게 동접과 매출이 계속 증가세여서 국내로 들어오는 로열티 액수가 늘어 피부를 ‘엔저’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도 문제지만, 이같은 엔화가치 하락이 장기화될 경우 해외 시장에서 국내업체들의 상대적인 경쟁력 약화도 몹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 게임업계가 온라인게임 개발 및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을 무기로 역공을 가할 경우 국내 업체들에겐 또 다른 부담일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엔화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이다. 일본의 저조한 GDP성장률로 대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세계 각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성장을 중시하는 아베 내각의 출범 등으로 환율 추이와 민감한 금리인상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게임업체들 역시 저 엔화 환율 시대에 대비한 새로운 경영 전략을 수립, 일본 시장에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년도 경영 계획 수립에 분주한 메이저게임업체들 역시 일본 매출을 보수적으로 잡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엔저에 대한 보다 능동적인 대안은 해외 진출 다변화에서 찾아야한다는게 중론이다. 실제 엔화 약세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영향이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으로 갈수록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특정지역, 특히 일본이 국내 게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 것은 길게보면 마이너스적 요소”라며 “온라인게임 수출 지역이 다변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다 안정적인 수출 구조를 띠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지역에서 의미있는 매출이 일어나야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자본과 한국의 온라인게임 기술력을 결합한 공동 개발을 통해 퀄리티를 더욱 높이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다양한 세계 각국의 게임문화에 부합한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선 게임강국인 일본의 게임소스와 기획력, 그리고 자본력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협업 모델 구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과의 공동 개발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겠지만, 보다 능동적인 한·일 온라인게임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엔저 파고를 극복하고 ‘종주국’의 위상도 유지, 발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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