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지는 않지만 요즘 정보통신부 내 분위기가 다소 의기소침해지는 모양새다. 본격화된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활동을 계기로 유관부처나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이 부의 위상과 진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IMT2000 사업권 포기 사태로 정책적 권위에 손상을 받았던 터다. 어쩌면 지난 98년 정부조직 개편 때처럼 부의 폐지론이 다시 들먹여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통부는 통신·전파·방송·정보산업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곳이다. 또 준사법기관인 통신위원회가 있고 우편행정을 담당하는 우정사업본부가 있다. 세부적으로는 정보보호나 정보문화와 같은 특수업무가 있겠다. 주변의 움직임을 대입해 보면 정통부 진로에 대한 한 편의 시나리오가 가능한 대목이다.
알다시피 방통융합추진위는 1∼2년 내에 새 융합기구를 출범시키는 산파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의 흐름 대로라면 새 융합기구(민간기구든 정부기구든)가 정통부의 통신 정책과 조직의 상당 부분을 흡수해갈 게 분명하다. 논의 과정에서 방송위원회의 ‘공익’과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계산’이 맞아떨어질 경우 통·방융합의 흐름이 아예 방송 중심으로 이끌어질 수도 있다.
유관부처의 기세도 심상치 않다. 문화관광부는 여차하면 콘텐츠를 통째로 가져갈 태세고 산업자원부는 정보산업을 아예 흡수하려 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업자의 기업 투명성을 걸어 이미 통신규제 정책 영역에 진입해 있고 건설교통부는 u시티나 홈네트워크 부문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고 있다. 우정 부문은 외청 독립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정통부가 통신위원회의 기능과 위상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해서 관심을 끈다. 통신사업 인·허가권과 약관 업무 등 정책 최고기능을 통신위로 이관하거나 집중시킨다는 구상이다. 정통부에서 그나마 고유 기능과 역할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조직이 통신위일 것이다. 물론 이런 구상은 나름의 명분은 있다. 역무 분류체계 개선이나 지배적사업자의 결합상품 허용 요구와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수용하면서 통신정책을 선진국형(사후규제)으로 바꾸는 일은 지금 당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은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이다. 이런 움직임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스스로 조직 운명을 예감하고 통신위로의 집결을 시도한다는 오해로 비칠 수도 있다.
지난 98년 폐지 직전까지 몰렸던 정통부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IT산업을 국가경쟁력의 원천으로 삼겠다는 당시 DJ 정권의 확실한 정책적 복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복안은 IT코리아라는 요지부동의 성과로 돌아왔다. 그래서 한때는 부총리급 부처 격상까지 거론됐던 정통부다.
그러나 요즘 정통부의 모습은 불황으로 힘들어하는 IT업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를 두고 광화문 관가에서는 정통부의 낮은 정치적 위상을 탓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부처는 실세 정치인 장관이 들어와 조직을 100명 이상 키웠다거나 전에 없던 영역을 새로 개척했다는 식이다. 방통융합추진위 구성을 보니 실세는 다 방송쪽 인사였다는 푸념도 섞여 나온다. 모두 다 정통부의 위상 약화가 곧 IT코리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서 하는 얘기일 게다.
정통부가 흔들리면 IT코리아도 흔들리게 돼 있다. 통·방융합 논의에서 선공을 가하거나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라는 식의 얘기가 아니다. IT코리아가 굳건해지려면 정통부가 먼저 굳건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고민의 순서가 그렇게 돼야만이 정통부가 건재하고 국가경쟁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제 정통부도 다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jsuh@etnews.co.kr
서현진부장@전자신문, j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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