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가 더 강화될 움직임이다. 북한은 미국이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며 맞장을 뜨고 있다. 북한의 또 한판의 벼랑끝 전술이다.
미국이 북한에 원하는 것은 6자회담 재개가 아니다. 6자회담 재개가 목표라면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방코 델타 아시아(BDA)’ 금융제재만 해제하면 된다.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핵포기 선언, 즉 핵포기에 대한 전략적 결단이다. 핵포기 전에는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제 6자회담보다는 금융제재가 북핵 해법에 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북한이 핵개발 포기를 선언할 때까지 이 구도로 가기로 결정한 듯하다.
미국이 작년 9·19 공동성명과 동시에 BDA 금융제재 카드를 꺼낸 것은 6자회담만으로 북핵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6자회담에서 미국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미국은 6자회담에서 미·일·한·중·러 5개국이 북한을 압박해 핵개발을 포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6자회담이 미·일 대 북·중·러·한의 2 대 4 형국으로 변질됐고, 동시행동 원칙을 주장하는 북한에 선핵포기를 주장하는 미국이 오히려 논리 면에서 밀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북한은 금융제재에서 큰 타격을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 금융제재만 해제하면 6자회담에 들어올 수 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금융제재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사일 발사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은 이 판을 바꾸어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로 북한이 얻은 소득도 있지만 잃은 것이 더 많다. 국제사회 여론이 북한에 등을 돌린 것이다. 미국은 대북 금융제재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게 됐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마저 대북제재에 동참시킬 수 있었다. 김정일 북한 위원장은 중국도 믿을 수 없다며 불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만지작거리는 유일한 카드는 핵실험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는 것은 김정일의 정권을 건 일대 모험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이 북한에 대한 본격 제재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핵보유로 인해 중국이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동북아에서 유일한 핵보유국인 중국의 군사적 위상이 떨어지며 일본의 핵무장, 대만의 핵무장이라는 도미노 현상이 올 수 있다.
미국은 더욱 단호하게 북한에 압박을 가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 어젠다는 핵개발에서 핵폐기 문제로 바뀌고 있다. 북한의 협상력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대북제재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미국은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경제제재만으로도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이 적극 참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허덕이는 북한으로서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경제제재를 버티기 어렵게 된다. 불을 보듯 뻔한 이런 결과를 예측하면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일은 핵을 포기할 수도 없고 핵실험을 강행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쉬운 선택은 현상유지다. 부시 미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대북 핵정책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김정일 정권이 건재할 수 있느냐다.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급변하고 있는 북한사회의 민심 변화, 이의 대처방안을 둘러싼 권력집단들의 노선 갈등 및 권력층의 동요 등의 변수로 인해 어떤 급박한 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북한은 핵문제의 막다른 골목까지 온 셈이다.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버틸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빤히 보인다. 핵을 가지고 싶다고 해서 다 가질 수 있다면 어느 나라가 핵개발을 하지 않겠는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만하게 볼 수 없다. 김정일은 지금이라도 최선보다는 차선을 선택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핵개발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uhjj@kin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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