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기술유출과 이공계 홀대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기술을 해외에 통째로 유출시키려던 연구원들이 적발됐다. 지난달에는 비메모리반도체 설계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려던 반도체 회사 임원과 이를 공모한 대학교수가 함께 붙잡혔다. 최근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들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긴밀하게 협조해 기술유출을 막아냈다고 한다. 핵심 정보기술(IT)을 외국으로 불법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은 이제 드물지 않은 일이 됐다.

 최근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이런 기술유출 적발 관련 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선 우리 IT가 외국에서 탐낼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로 여겨져 뿌듯하다. 선진국에서 구걸하다시피 얻어온 기술로 제품을 만들면서 살아온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서 많은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보유하게 되면서 산업스파이의 주요 활동 거점이 됐음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정치 사찰과 도청 등으로 악명 높던 국가정보원이 국가 핵심기술을 지키는 데 나서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엿보인다. 지난 2003년부터 올 7월까지 첨단기술을 국외로 유출하려다 국정원에 적발된 사례는 44건 이른다. 유출 직전에 막았기에 망정이지 이게 성공했더라면 40조원대의 손실이 났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기술유출 사건은 우리 기업의 기술보안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기술유출 관련 기사를 볼 때면 남들이 탐낼 만한 몇 안 되는 우리 기술이 외국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 더 앞선다. 세계의 선진기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에서 ‘산업스파이 행위는 최고의 연구개발(R&D)’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반도체와 IT 등 첨단기술이 일확천금에 눈먼 일부 관계자들에 의해 해외로 흘러가 우리와 기술격차를 줄일 것을 상상하면 걱정마저 든다.

 문제는 기술과 돈을 바꾸려는 이들이 거의 기업 내부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적발된 기술유출 사건을 살펴보면 대부분 기업의 내부인사, 그것도 연구인력과 관련이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거나 담았던 기업과 국가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탕주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무엇 때문일까. 우리 기업이 기술개발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공계를 홀대하는 현실과도 맞물려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사실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직업 개념은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업으로 바뀌고 있다. 재직중 개발한 기술과 노하우로 몸값을 올려 이직에 대비하는 것은 연구원들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남의 것을 가져왔지만 이제부터는 남이 우리 것을 몰래 가져다 쓰는 시대가 됐다는 점이다. 힘들여 양성해 놓은 기술인력이 오랜 연구 기간과 수많이 시도를 거쳐 개발한 기술이 남들에게 대가 없이 넘어가는 순간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많은 자금을 투입해 성공한 기술로 수익을 얻고 다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술유출 방지의 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막대한 기술개발 투자는 녹슨 파이프에서 새는 수돗물과 다름없다. 열 가지 기술유출 방지법이 백 가지 신기술 개발과 맞먹는다. 기술유출 방지는 필요하다. 하지만 연구인력에 대한 처우개선 없이 이루어지는 보안시스템은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이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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