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철 농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유수련

 “땅은 있는데 농사지을 도구가 없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땅을 없앨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애니메이션 총량제를 바라보는 한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2005년 7월 1일 도입된 애니메이션 총량제가 어느덧 시행 1년을 넘겼다. 애니메이션 총량제란 지상파 방송사가 전체 방송시간의 1%(EBS는 0.3%)를 국산 신규 애니메이션으로 편성하도록 의무화한 조치다. 방송국과 투자사, 제작사의 연계로 TV용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는 총량제가 스크린쿼터와 같은 버팀목이라며 ‘뭔가 제대로 될 듯한 분위기’는 조성됐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예전에는 지상파 방영이 계약의 전제조건일 때가 많아 기획만 하다 엎어지기 일쑤였지만, 총량제 시행으로 방송사의 수요가 보장되면서 실제 제작에 들어가는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될 듯한’ 분위기가 ‘되고 있다’로 바뀌려면 다시금 정책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늘어난 편성 시간을 채우기 위해 어떻게든 지속적으로 ‘신규’ 작품을 구입해야 하는 방송사는 제작투자 예산을 늘렸지만, 30분짜리 한 편당 1억원의 제작비가 드는 애니메이션에 투자하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 게 속사정이다. 방송국으로서는 예산을 아끼면서 시간을 채우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1억원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KBS가 40% 정도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제작사가 조달한다. 나머지 60%를 조달해야 하는 업체로서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는 자금력이 없는 영세한 업체가 대부분이고, 내년이면 만기가 되는 애니메이션 펀드들은 원금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며 자금줄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시행하는 스타프로젝트나 우수파일럿제작지원과 같은 프로그램도 있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엄두도 못 낸다.

 분명 기회의 땅은 마련됐다. 한 번 농사짓고 버려질 땅이 아니라면 정부와 방송사, 투자사는 다시 한번 ‘비료’를 뿌릴 채비를 해야 한다. 업계 역시 꾸준히 수확물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을 심도록 기획 단계부터 제대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문화부·유수련기자@전자신문, penag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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