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살아 남는 것

 “한·미 FTA는 부품소재의 대일 의존도를 완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최근 산업자원부 기간제조산업본부장은 브리핑에서 이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한·미 FTA의 최대 관심사는 농산물이다. 그 그늘에 가려 정작 중요한 부품소재산업은 관심 밖이다. 몇몇 관련자만이 귀를 쫑긋 세울 뿐 국민도, 언론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난해 대미 12대 부품소재 분야 수입품목 중 일본과 미국이 일치하는 품목은 53.7%다. 일치 품목의 대일수입액 대비 대미수입액은 74.4%다. 수치상으로 일본에 의존하는 핵심 부품소재의 수입처를 미국으로 전환하면 경쟁적 조달 경로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품소재에 관한 한 한·미 FTA는 위기이기보다 기회에 가깝다.

 그러나 무역이 단순 수치만으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강점을 갖는 분야가 있고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공세를 취하는 분야는 한국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농산물이다. 넘쳐나는 농산물로 세계 경제를 움켜잡겠다는 야심이다. 그렇다면 아직 개시조차 하지 않은 한·일 FTA의 핫 이슈는 볼 보듯 뻔하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부품소재 분야의 개방을 요구할 것이다. 이 역시 일본 경제의 재도약을 의미한다.

 부품소재 분야에서 일본 의존율은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상품인 휴대폰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주요 부품은 미국과 일본산이다. 금액상 절반에 가깝다. 고스란히 외화가 유출되는 셈이다. 그래서 휴대폰 안에는 국산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당연성이 내재돼 있다.

 상징성 측면에서 농산물 개방은 큰 이슈다. 하지만 실속을 따져 보면 한·미, 한·일 FTA의 맹점은 부품소재에 있다. 수입처 다변화로 경쟁적 조달을 이끌 수는 있겠지만 결국 수입이다. 얼마 전 중국의 마늘 수입 규제에 대응해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의 수입을 금지한 사건이 있었다. 농가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당시 마늘 수입 규제로 인한 우리 농가의 실익은 100만달러 정도였다. 반면에 휴대폰 수출 금지로 인한 피해는 10배가 넘었다.

 농업의 어려움도 고려하고 부품소재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중요한 사안이라고 착각하면 디지털 사회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살아 남는 것은 ‘강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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