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디지털기회지수(DOI:Digital Opportunity Index) 평가에서 우리나라를 180개국 가운데 1위로 선정했다. DOI란 정보통신 인프라 보급, 기회 제공 및 활용도 등 정보통신 발전 정도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디지털’ 하면 ‘뭐 돼지털?’이라고 할 정도로 낯설어 했던 TV광고의 한 장면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정보화 및 정보통신정책의 성과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무한 경쟁, 글로벌 경쟁을 생각할 때 현 시점에서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점검하면서 질적 전환을 모색하는 것은 디지털기술의 개발과 정보통신산업의 미래를 위해 유익하다고 본다.
첫째, 디지털기술의 ‘사회적 가치’와 ‘질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기술은 이제 독자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수렴되는 융합기술이다. 이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사회적·문화적으로 활용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기술은 상용화돼야만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때문에 기술동향의 분석과 수요조사에서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기술의 사회적 가치란 곧 ‘사회적 활용 정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평가와 예측은 기술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 질적 특성을 고려해야 가능하다.
둘째, 디지털기술의 사회적 확산을 고려할 때 기술을 활용하는 주체와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개발자와 사용자는 구분되지만 사용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개발자의 상품은 상품가치를 상실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관돼 있다. 때문에 기술 소비자, 활용 주체의 사회적·문화적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홈 네트워크 사업의 소비자는 대다수가 여성이다. 이들의 사회적·문화적 성향, 디지털기술에 대한 인식과 활용능력을 고려하는 것은 사업 효과의 배가라는 결과를 낳는다.
셋째,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최소화해야 한다. 디지털기술이 발전할수록, 또 지식정보사회가 발전할수록 격차는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때문에 디지털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은 정보통신 기반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디지털기술의 개발과 상용화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는 곧 디지털기술의 상용가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지털기술의 이용자와 이용자 환경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파악해야 한다.
넷째, 현재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디지털 자본’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디지털 자본(digital capital)은 새로운 가치 창출이 이루어지는 웹 비즈니스를 위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부(富)로서 경제자본이나 사회자본처럼 문화자본과 함께 디지털 사회에서 중요하며, 디지털기술의 축적과 새로운 기술 융합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러한 축적과 융합, 수렴 현상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없다면 디지털기회는 단지 기회에 그칠 수 있다.
끝으로 기술의 사회적 활용도라는 점에서 ‘여성적 가치’를 인식하고 여성을 정보통신산업의 주력인력으로 양성해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21세기의 여성은 사회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2의 성’이 아니라 다양한 네트워크와 관계 형성을 통해 환경과 사회를 새로 창조하는 ‘제1의 성’이라 했다. 이런 주장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이에 근거를 두는데, 여성은 좌우 뇌가 발달한 ‘웹 사고’ 구조를 갖고 있어 디지털 사회에서 남성보다 잘 적응하고 지식정보노동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국제금융 비즈니스로 성공한 싱가포르에서는 이 분야 전문가 대다수가 여성인 것처럼 글로벌 IT 비즈니스 분야에서 여성을 전략적으로 양성해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미래희망 없이 꿈을 꿀 수 없는 것처럼 디지털기술도 사회적 가치나 활용도를 배제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제 디지털기술의 개발과 정보통신산업의 기반 육성에서도 ‘사회적 가치’는 물론이고 21세기의 특성인 ‘여성적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함께 질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정숙경 디지털문화연구소장 skyjung64@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