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돌아보면 시시각각 눈부시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영향력이 이미 산업·경제 분야를 넘어 일상생활 전 영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터넷 접속과 연결은 빠뜨릴 수 없는 하루 일과가 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IT강국이다. OECD·ITU 등 여러 국제기구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전자정부 구현 △IT의 경제기여도 등에서 한국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인정하고 있다. 최근 ITU가 발표한 디지털 접근지수(DOI)에서는 180개국 가운데 2년 연속 1위를 차지함으로써 다시 한번 정보화강국임을 입증했다.
과거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경제발전을 이룩해 왔다. 이는 우리의 근면 성실함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를 외치는 민족성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의 위업을 이룩한 히딩크 감독도 한국에 도착해 처음 배운 것이 이 말이라고 하니 ‘빨리빨리’라는 우리 국민성을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일본 IT 관련 포럼에 초대돼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먼저 한국 IT 발전성과와 정보보호에 대한 발표를 마치고 나서 일본 전문가의 질문을 받았다. 한국에 유난히 정보화 역기능 사고가 많은 것은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서 축소지향의 철저함을 지닌 일본인은 정보화 역기능 사고가 ‘빨리빨리’의 부정적 면에서 비롯됐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질을 불과 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국인은 기가 충만해 집중력이 뛰어나고 문제를 해결할 때도 핵심에 바로 접근, 사태를 신속히 처리한다. 지난 6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광화문 앞 월드컵 축구 거리응원은 우리의 이런 면을 잘 보여준 예다.
일본인은 질서 있게 흐르는 물에 비유된다. 이름난 음식점이나 극장 매표소 등 어디든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본 사람의 모습은 뒤에서 흐르는 물이 앞의 물을 앞서지 않는다는 자연 법칙에 순응하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인은 기다림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철저하다. 일본 어느 의사가 수제 가방을 주문한 지 3년 만에 납품을 받았다는 기사는 가히 놀랄 만하다. 마음에 드는 재료가 손에 들어오기까지 기다리는 인내와 한번 주문받은 물건은 철저하게 만든다는 장인정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믿고 기다리는 고객이다.
정보사회에서 ‘빠름’은 경쟁력이다. 누구보다 빠른 정보수집·분석·판단이 성공의 명운을 가른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정보화를 추진해 왔다.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의 꾸준한 IT 투자가 결실을 보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양한 찬사가 따라다닌다.
지금 정보사회는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바로 ‘유비쿼터스 사회’의 도래다. 주요선진국을 중심으로 정보화 선두그룹의 보이지 않는 쟁탈전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번 ‘빨리빨리’를 외칠 것이다. 필요한 것을 빨리 갖다주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는 누구보다 앞서 미래 유비쿼터스 사회의 모습을 하나씩 보여줄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빨리빨리’가 ‘대충 대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매일 수십 가지의 다양한 정보화 관련 제품과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 보기도 전에 또 다른 새로운 기기와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도래하고 있는 u사회는 지금까지의 정보사회를 한층 업그레이드해줄 것이 자명하다. 반면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보환경이 가져올 위협도 예전과는 그 강도가 다르다. 어쩌면 우리가 예견하지 못한 위협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빨리빨리’가 일본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꼼꼼함과 치밀함을 갖고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홍섭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 hslee@ki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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