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전사자원관리(ERP) 프로젝트가 실종됐다.
대한항공 등 연초 기대를 모았던 신규 대형 프로젝트들이 사실상 연내 발주가 어려워지고, 대기업들이 경제 상황 등을 이유로 ERP 업그레이드를 서두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형 프로젝트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SAP코리아와 한국오라클은 대안 시장 찾기에 나서며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형 ERP 프로젝트 기근=수년째 ERP 구축 프로젝트를 미뤄 왔던 대한항공과 현대자동차가 경기 회복 바람을 타고 ERP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았다. 양사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 결과에 따라 업계 판도를 바꿀 만한 매머드급 폭풍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기대감은 현대자동차가 비자금 사태로 비상 경영에 돌입하면서 물 건너갔다. 대한항공도 자체 개발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분위기다. 대한항공은 그룹 IT서비스 업체를 최대한 활용, ERP를 구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우성 SAP코리아 본부장은 “지난 95년 국내에 ERP가 도입된 이후 올해 사상 최악의 대형 ERP 프로젝트 기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현재 도입을 검토중인 일부 보험사가 변수지만 사실상 올해 대형 영업은 끝났다”고 밝혔다.
◇업그레이드 수요도 올스톱=지난해 삼성전자가 글로벌 ERP를 구축하면서 대규모 업그레이드에 나서자, 관련업계는 올해 대기업 업그레이드 수요에 맞춰 전략을 수립했다. 포스코 등 90년대 후반 ERP를 구축한 대기업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보수적인 경영전략을 구사,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김철 한국오라클 본부장은 “대외적인 경제 불안 요인으로 대기업 ERP 업그레이드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올해 기대를 모았던 상당수 업그레이드 수요가 내년으로 미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견기업 대체 수요 부상=대기업 ERP 프로젝트가 실종되면서 SAP와 오라클은 중견기업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매출 규모 1000억원 이상 기업이 주 대상이다. 중견기업은 대부분 자체 개발한 솔루션을 통해 재무관리 등 핵심업무를 처리해 왔으나, 최근 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패키지 ERP 도입을 늘리고 있다. 한국오라클과 SAP코리아 두 회사만 올해 10여개 중견기업을 신규 고객으로 확보하며, 그 나름대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견기업 수요도 업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서 “경기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하반기에는 시장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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