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포럼]애니메이션과 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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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경기에서 우리 선수가 우승을 하거나 톱10 안에 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90년대 말 박세리라는 걸출한 국민스타를 배출하면서 당당하게 미국 프로 세계의 본류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낭자의 LPGA 진출 원조는 전미 아마추어 골프 최고의 자리를 거쳐 프로 세계에서 고군분투했던 펄신인 듯싶다.

 우리 애니메이션 산업 역시 지난 수십년간 아마추어 강자로서 세계 메이저들의 제작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기술적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다져왔다. 거기에 반대급부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더욱 강해진 창작 의지와 프로젝트 투자의 활성화, 정부의 창작 지원 정책 등이 맞물려 최근 몇 년 사이에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국제적인 명예는 물론이고 이제는 작품으로 부까지 일궈낼 ‘프로 박세리’의 탄생을 지켜보는 시점이다.

 ‘애니메이션 사업이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것과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 애니메이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니라 ‘포켓 몬스터’였다.” 미국 시장을 잘 아는 한 애니메이션 감독의 말이다.

 이처럼 상업성과 작품성은 철저히 공존하면서도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다시 말해 작품의 성공을 더욱 큰 산업적 성공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보는 시각을 철저하게 재해석하고 냉철하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보는 애니메이션 사업은 이 같은 원론적 정의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 출발점은 애니메이션 사업을 영상 사업이 아닌 브랜드 사업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을 브랜드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작품의 기획·제작 프로세스가 달라지고 사업, 즉 브랜드의 정체성은 어떻게 가져갈지, 핵심사업은 무엇인지, 라이선싱 비즈니스는 언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또 어떤 파트너와 해야 할지, 제품의 품질은 어떻게 유지할지 등 훨씬 포괄적 부분을 심사숙고하게 된다.

 지난 2004년 말 기준으로 ‘바니’는 라이선스 매출만으로 총 646억원을 벌어들였다. ‘토마스’는 499억8000만원, ‘밥 더 빌더’는 598억6000만원 정도다. 짧게는 15년에서 길게는 50년 이상 된 캐릭터들인데 이들의 매출 증가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라이선스 매출은 대부분이 수익이므로 판권(카피라이트) 비즈니스 기업을 보는 미국식 평가 기준에 따르면 각 프로젝트가 4조∼5조원 이상의 브랜드 가치를 갖는다. 이쯤 되면 작품 하나가 국내 웬만한 대기업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런 프로젝트 10개를 만든다면 40조∼50조원 규모의 기업군을 갖게 되는 셈이다.

 ‘토마스’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17년인데 1945년이 돼서야 첫 책이 출간됐고 40년이 지난 1984년에 첫 TV 시리즈가 나왔다. 성공한 브랜드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대규모의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와 장기적인 인내가 요구된다.

 위와 같은 사례들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기획 제작사·투자사·판권 배급사·라이선스 업체 등 각 분야의 관련 사업자가 힘을 모아 브랜드적 시각으로 애니메이션 사업을 재해석하고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개발 및 진화시켜야 한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그 같은 스테디셀러를 만들어 인정받으려면 지금까지의 노력과 좌절보다 앞으로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LPGA에서 활약중인 우리 선수들은 커뮤니케이션 문제, 인종의 벽, 스타성 부재로 인해 경기장을 넘어 미국 주류로 편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뛰어난 실력과 외모, 언어, 끼로 뭉친 미셸 위의 등장을 보면서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대접받는 킬러 콘텐츠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느낀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도 조만간 이런 멋진 ‘괴물’의 습격을 기대해 본다.

◇김일호 오콘 대표이사 ihkim@o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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