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세계 200여개 기업과 저명한 학자가 모여 디스플레이 기술 경연과 축제의 장을 펼친다. 미국 정보디스플레이학회가 주관하는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학회 및 전시회(SID 2006)가 그것이다. 바로 오늘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SID 2006이 개막한다. 이 행사의 주빈은 한국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이 세계 최대, 세계 최초의 행진을 계속하며 기술과 시장을 선도해왔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역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한국업체와 한국인에게 쏠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세계 디스플레이산업계에서 일본과 대만에 비교했을 때 보잘것없는 변방국에 불과했다. 매년 SID 행사가 열릴 때면 마땅히 내놓을 제품이 없어 전전긍긍해야 했다. 불과 10년 만에, 아니 정확하게는 5년여 만에 한국은 판도를 뒤집었다. 대형 액정디스플레이(LCD) 패널과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에 대한 ‘겁없는’ 선행투자 덕분이었다. 소형 LCD에 안주하려던 일본은 이후 대형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주변국으로 전락했다. 대만까지 원군으로 끌어들였지만 옛 명성을 되찾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에도 지난 몇 년간처럼 한국의 디스플레이업계가 SID 행사를 빛내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불안하다. 대형 LCD 시장에서 한국은 지난해 대만에 추월당했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는 올해도 대만이 이 분야에서 1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PDP에서도 일본의 증산투자가 놀라울 정도여서 올해 한국을 앞지를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마저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디스플레이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나서 불안감을 더해준다. 10년 전 한국·일본·대만 3국간에 벌였던 디스플레이산업 주도권 싸움이 이제는 중국까지 가세해 다시 재연되고 있는 형국이다.
10년 전 단 한 번의 실수로 일본이 디스플레이의 왕좌에서 밀려난 것처럼 한국도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행히 삼성과 LG는 각각 탕정과 파주에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선행투자를 계속하고 있어 일본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절대 방심은 금물이다. 경쟁국들이 TV와 모니터 등 전방산업과 부품·부품소재 등 후방산업을 주도하고 있는만큼 한국의 디스플레이는 한 번 밀려나면 회복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일본은 원천기술과 막강한 부품·장비산업을 활용해 대만까지 원군으로 포섭했지만 아직까지 한국을 추월하지 못하고 있다. 전후방이 취약한 한국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디스플레이는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국가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여간 큰 게 아니다. 디지털컨버전스가 가속화되면 모든 제품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이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디스플레이산업 경쟁력이 장차 모든 제품과 산업에 파급될 것이라는 분석을 근거로 한다. 20세기까지는 자동차산업을 보유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21세기에는 디스플레이가 그렇다. 디스플레이산업 보유 국가가 자동차산업 보유국보다 적다는 사실은 깊이 음미해 봐야 할 대목이다.
디스플레이산업의 주도권을 계속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패널업체들의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품·장비 협력사를 줄세워 놓고 제품 경쟁력보다는 안정적인 거래에만 안주하려는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10년 전 현실에 안주하려 했던 일본 패널업체들의 뼈아픈 과오를 타산지석으로 되새겨야 한다. 부품·장비업체들도 개방된 큰 시장에서 기술과 제품 경쟁력으로 경쟁해야 비로소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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