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동반혁신을 통한 상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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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다양한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소득·교육·삶의 질과 같은 분야의 양극화가 여기에서 기원하고 심화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양극화 해소의 첫 번째 과제로 꼽은 것이 일자리 창출과 함께 중소기업 활성화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대·중소 기업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산업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은 2003년 42.2%에서 지난해 10월 33.4%로 떨어졌고, 2004년 중소기업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대기업의 절반, 생산성 증가율은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외형만큼 내실도 좋지 않아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004년 기준 4.3%로 대기업(9.5%)의 절반도 안 되며 임금은 64%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대·중소 기업 간 양극화는 ‘과거와 현재형’이 아니라 ‘미래형’이다. 연구개발(R&D)투자의 격차 역시 자꾸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중소기업의 R&D 비중은 투자액 기준 28.8%에서 23.6%로, 연구원 수 기준 48.8%에서 42.2%로 감소했다고 한다. 또 상위 5개사의 R&D 투자가 대기업 전체 R&D 투자의 절반이라고 하니 R&D 투자의 양극화도 심각한 상황이다.

 R&D 투자의 격차는 곧 ‘혁신역량’의 격차이며 ‘혁신기반’의 격차다. 여기서 더 벌어지면 앞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는 대기업의 내일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2003년 기준 대·중소 기업 상위 5대 주력업종 중 세 분야나 중복되며, 중소기업의 거래 모기업 매출비중이 85.7%, 하도급 비율이 63.1%나 되는 현실은 그동안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밀착해 성장해왔음을 보여준다. 중소기업 혁신이 건강한 토대를 만들지 못하면 대기업 혁신도 곧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대·중소 기업 양극화의 시련을 겪었을 외국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일본 도요타와 부품업체 덴소, 독일의 벤츠와 보쉬 그리고 핀란드 노키아의 성공은 세계적인 대·중소 기업 동반 혁신·협력 사례로 꼽힌다. 도요타의 성장에는 덴소라는 협력업체의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바탕이 됐다. 덴소 역시 협력업체를 끌어안는 도요타의 경영지원이 없었다면 현재 연매출 23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협력관계는 벤츠와 보쉬 사이에서도 성공을 일궈냈다. 보쉬는 벤츠와 더불어 성장했지만 지금은 벤츠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부품전문 업체가 됐다. 한편 핀란드 GDP의 30%를 차지하는 노키아의 위력도 중소규모 협력업체의 기술개발 위험을 절반 가까이 부담하는 혁신적인 네트워킹 경영전략에서 나온다는 것이 많은 연구자의 공통된 평가다.

 이런 성공사례를 보면 비록 기업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어 협력을 시작했지만 결코 처음부터 강(强)기업과 약(弱)기업이라는 구분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각자에 맞는 ‘최적의 크기’를 경쟁력으로 유지하면서 꾸준히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을 주고받았던 것이며 그것이 성공과 번영의 열쇠가 됐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구매조건부 기술개발사업’과 같은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대·중소 기업 협력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이를 기술과 경영혁신의 상호작용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직 부족한 편이다. 강한 기업이 약한 기업 몇몇을 선택해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강한 기업이되 서로 역할이 다른 기업의 협력을 진정한 의미의 대·중소 기업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의 기술·경영 혁신에는 중소기업이라는 협력자가 꼭 필요하며, 또 중소기업이 스스로 기술과 경영의 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아무리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이 있어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확고한 의식변화만이 현재까지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상일 한국산업기술평가원 경영관리본부장 silee@i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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