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고객 때문에 사면초가에 빠졌습니다.”
모 중견 휴대폰 부품업체를 경영하는 A 사장은 옴짝달싹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2년 넘게 공들여 해외 유명 휴대폰 업체를 고객으로 잡았지만 물건을 주지 못해 계약 위반에 몰릴 위기에 처했다. 팔 물건은 당연히 있다.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격 조건도 나쁘지 않다. 모든 조건을 갖췄는데 왜 A 사장은 궁지에 몰리게 됐을까? 그 해답은 기존 고객인 국내 휴대폰 업체가 쥐고 있다.
A 사장의 설명은 대략 이렇다. 해외 경쟁업체에 제품을 판매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국내 고객사 구매 담당자에게서 바로 연락이 왔다. 그 담당자는 해외 경쟁사에 물건을 팔지 말라고 요구했다. A 사장은 “이번 계약은 해외시장 공략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설명하며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싼 가격에 빨리 드리겠다”는 말로 설득했지만 구매 담당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입 물량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기존 고객의 말을 듣자니 미래가 없고 요구를 거절하면 매출이 반토막나게 됐다. 이는 비단 A 사장만의 처지가 아니다. 대부분의 국내 휴대폰 부품업체는 대기업인 휴대폰 업체에 종속돼 있다. 어렵게 다른 고객을 개척해도 ‘기업비밀 유출 우려가 있다’거나 ‘경쟁 업체의 이익은 우리의 손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납품하기 힘들게 만든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정당한 이윤 추구는 가장 확실히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따라서 휴대폰 부품업체가 법적 잘못이 없는 노력의 결과로 얻은 고객은 무조건 보장받아야 한다.
기업비밀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을 탄탄하게 만들거나 경쟁업체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대신 협력업체의 앞길을 막아서 얻는 경쟁력은 시장경제의 원칙을 뿌리부터 흔드는 행위다.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메이드인 코리아 휴대폰의 이면에는 협력업체의 애환이 서려 있다. 협력업체의 발목을 잡으면서 실현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의 꿈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선언이 빛 좋은 개살구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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