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안된다고, 못한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매달려온 한경희스팀청소.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결국 우리는 해냈다. 제품 무게가 1.5㎏밖에 되지 않는 스팀청소기가 탄생한 것이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4년동안 10억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부으며 오랜 진통 끝에 낳은 귀한 내 자식이었다. 처음 개발에 성공하고도 오랜 세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던 스팀청소기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뻐서 울 수도 있다니. 그러나 곧 스팀청소기가 잘 팔린다는 소문을 타고 유사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고, 여태까지 내가 쏟아부은 노력은 유사품들 속에서 빛을 잃고 있었다. 우리 제품을 차별화하는 것이 어려웠다. 생각 끝에 제품에 내 이름을 걸기로 했다. 무게가 3㎏이 넘는 유사품을 쓰다가 우리 제품을 사용해 본 소비자들은 여기저기 스팀청소기는 ‘한경희 스팀청소기’가 제일이라고 소문을 내주었다. 개발자의 이름을 건 제품 실명제는 주부들의 믿음을 얻는 데 한 몫했다.
대규모 광고 홍보비를 쏟아붓는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으로서 제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던 내가 처절한 실수를 범한 적이 있다.
모 방송사 시트콤 제작팀에서 스팀청소기를 소재로 제작할 예정인데 PPL 지원을 하겠느냐고 문의해 왔다. 당시만 해도 납품업체 결제도 겨우 제 날짜에 하게 된 상황이었기에 1000만원 가까운 지원은 우리로선 무리였다. 결국, 우리가 못하게 되자 경쟁사로 기회가 넘어갔다.
아뿔싸! 한순간의 실수가 이렇게 큰 결과를 낳을 줄이야. 시트콤 내용이 스팀청소기 두 개를 주문한 주인공이 한 대를 다른 사람한테 넘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이었는데, 초기 시장이라 스팀청소기를 잘 모르는 대다수 소비자들에게 경쟁사 제품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일으켰다.
1000만원 아끼려다 그야말로 몇십억 손해를 보았을 뿐 아니라, 독보적인 존재였던 스팀청소기 시장에서 경쟁사 제품이 알려지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꼴이 된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 통곡해야 소용없는 일. 어차피 스팀청소기 시장 자체가 커지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 하나만 독주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시장점유 1위만 고수한다면 다른 업체가 같이 노력하는 것이 전체 시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 더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가 특허 관련 법적 대응을 안 하는 가장 큰 이유기는 하지만 아무리 이런저런 논리로 위로한들 이로 인한 타격은 두고두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경영자로서 한순간의 판단 오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선의의 경쟁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제품이 창출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동시에 험한 길을 나 혼자 가는 게 아니라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앞으로도 무수한 경쟁 업체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도전이 반갑게 느껴진다. 그들로 인해 우리가 더 분발할 수 있고, ‘이만큼 했으니 됐다’는 식의 안주도 없을 테니 말이다.
rhahn@steamclean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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