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규
전자태그(RFID) 시장이 정부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은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RFID 전문업체를 타이틀로 내건 업체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쏟아졌다. 관련 기업마다 ‘세계 최초’ ‘국내 첫 개발’ 등 화려한 수식어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제품을 실제 적용하는 프로젝트에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해 반품되거나 공급업체가 아예 바뀌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정부 대형 프로젝트에 공급된 RFID 리더가 근접거리에 있는 태그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양산기술이 부족해 수작업으로 태그를 제작하다가 오류가 발생, 공급 제품 중 일련번호가 빠져 곤욕을 치르기도 있다.
관련 소프트웨어 업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RFID 미들웨어는 국산화 업체가 늘고 있지만 일부 업체가 이미 개발된 제품의 소스를 구입한 뒤 그럴듯하게 포장만 해 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남이 개발한 기술에 껍데기만 씌우고 있는 것이다. 기초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프로젝트에서 요구하는 응용기술에는 아예 손도 못 댈 때가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외형적 실적 쌓기’를 위해서다. RFID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면서 관련 업계에 투자자금이 쏠리고 있다. 이전 벤처 열풍 때와 같은 ‘묻지마 투자’ 수준은 벗어났지만 제품과 실적만 보여주면 어렵지 않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실력보다는 실적 확보에 집중하면서 편법도 동원하는 것이다.
업계는 RFID 관련 업체가 1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련 협회에 등록된 업체가 235개에 불과한 것을 보면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업체가 상당수 있는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실력을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그동안 관련 산업을 주도해 온 정부는 세계 시장 선점을 염두에 둔 빠른 정책 시행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두 걸음 앞을 내다보고 옥석을 가리는 잣대를 마련해야 할 때다.
◆디지털산업부 서동규기자@전자신문, dk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