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 1952년 일본인 데스카 오사무가 소년지에 연재한 후 1963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일본인에게 아톰은 단순한 만화의 주인공 또는 가상의 로봇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톰은 패전의 아픔을 잊게 해준 진정제요 재건정신을 고양시킨 각성제였다.
1952년이라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강타한 원자폭탄 ‘아톰’(Atomic bomb)의 공포가 아직 가시지 않았던 때인데 어떻게 일본인은 만화 속 주인공 아톰에 그렇게 열광할 수 있었을까. 물론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이는 기술을 중시하는 일본의 문화적인 분위기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당시 일본은 미국에 비해 열등했던 기술력을 패전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기술 중시 풍토를 조성해 가고 있었다.
아톰을 보며 꿈을 키운 세대들의 의식이 산업계의 기술개발 노력과 합쳐져 오늘의 일본을 ‘로봇 강국’으로 만들었다. 1980년대 이후 여타 선진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2.0∼2.6%인 데 비해 일본은 항상 3%를 넘었다. 총 연구개발 투자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도 다른 선진국은 60% 미만이지만 일본은 75%에 이른다. 일본에서 생산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산업용 로봇의 수는 미국이나 유럽을 능가하고 있다. 혼다자동차는 10년간 1000억원을 투자하는 뚝심으로 지난 2000년 인간형 로봇인 ‘아시모’를 탄생시켰고, 지금도 일본은 지능형 로봇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로봇 분야만이 아니다. 경제의 각 부문에 걸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일본의 기술친화적인 문화야말로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자극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신기술과 이를 응용한 신제품을 받아들이는 데 일본 소비자만큼 적극적인 국민은 없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IT제품을 중심으로 신제품 시험장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지만, 산업 전반을 보면 아직 일본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일본 전자상가를 둘러본 사람이라면 출시된 지 수개월밖에 되지 않은 제품들이 진열대 한 귀퉁이에서 구형 취급을 받고 있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인 배경이 일본 기업들로 하여금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과 최고의 기술을 개발토록 만들었고 그 결과 오늘의 기술 강국 일본이 있는 것이다.
다시 아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본 원작의 ‘철완(鐵腕) 아톰’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주소년 아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술을 수용하는 자세에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인에게 아톰은 강철어깨를 가진 기계소년으로 친근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기술로 이루어낼 수 있는 꿈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온 아톰은 상상의 우주공간에서 내려온, 재미있지만 허구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아직도 우리가 일본의 기술 장벽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GDP의 3%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총 인구는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하지만 한 해에 배출하는 이공계 인력 수는 미국과 거의 맞먹는다. 기술이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에 기술 혁신을 위한 물리적인 토대는 상당 부분 갖추어져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기술을 사랑하는 문화적인 토양 없이는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름다움에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가 유럽의 패션산업을 일궈냈고, 기술 친화적인 문화가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과 독일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었다.
기술은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다. 기술이란 우리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돈도 벌게 해주는 수단이다. 기술의 도움으로 우리의 꿈과 상상속 세계는 어느덧 현실이 된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존경받고 제대로 대우받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초등학생 시절 품었던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식어지게 만드는 풍토가 계속되는 한 우리 기술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다.
◆박봉규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bongkp@kote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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