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
게임 업계와 정치권이 난데없는 e스포츠 행사 하나로 벌집을 쑤셔 놓은 형국이다.
사상 초유의 ‘e스포츠 게이트’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생겨나고 있다.
사태는 국회 ‘e스포츠&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사무국이 33명의 모임 의원 동의 없이 무단으로 주요 게임업체에 ‘대통령배 e스포츠 제전(가칭)’ 후원을 요청하면서 불거졌다.
‘성의표시’ 정도로 응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게임업체로서는 억대 후원금이 제안되자 부담이 커지게 됐고 급기야 일부 업체가 공문을 외부에 공개하면서 이번 일이 세상에 드러났다. 제안을 받은 업체는 이미 개별적으로 방송 리그전이나 e스포츠협회 공인 게임으로 e스포츠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가욋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정치권 주관행사가 그러하듯 실속이 없다는 점도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 모임’이라는 행사 주최측의 중량감에다 대통령 명칭까지 걸린 행사라는 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협의 없이 후원 부처로 거론된 교육인적자원부·문화관광부·정보통신부 등은 공식적으로 연관성을 부인하며 거리 두기에 나섰다.
한 부처 관계자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마치 우리 부가 공식 후원하는 것처럼 문건이 꾸며져 있어 당황했다”며 “절차를 무시한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국내외에서 e스포츠 열기가 높아지고, 기업 투자가 줄을 이으면서 정치권도 앞다퉈 e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 정치인이 너도나도 e스포츠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고 급기야 국회에 모임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여기까지는 좋다. 정치의 생명이 인기이듯,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e스포츠를 인기 높이기의 통로로 이용하는 점까지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 막 크기 시작한 산업의 ‘싹수’를 정치논리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게임·e스포츠 업계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관심’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디지털문화부·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