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나 하고 싶은 사업 아이템이 생겼어요.”
남편이 반대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일었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지지해 줄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무슨 사업인데?”
“뜨거운 대걸레를 만들 거예요. 스팀이 나오는 대걸레요. 제대로 된 스팀청소기만 만들면 고된 가사 노동에서 주부들을 해방시킬 수 있어요. 분명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고요. 당신만 날 믿어준다면 자신 있어요.”
해방이라는 표현…,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만큼 간절했다. 내 얼굴을 바라보던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그래, 시작이 반인 거야’ 하며 빙그레 웃음을 머금었다. 그 무렵, 남편 사업도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시기에 내가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왜 불안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나는 한 번도 내 사업을 꾸려 본 적이 없는 초보 운전자였다. 도대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 우리는 밤새도록 사업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스팀청소기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굳힌 후 나는 전자제품 상가부터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전기청소기 같은 걸레가 나와 있나요?”
“아, 걸레 청소기요. 시중에 나와 있는 게 있는데요. 진공청소기에 걸레를 붙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불편해하더라고요.”
“왜요?”
“깨끗하게 안 닦이니까요.”
“그럼, 기능도 편리하고 뜨거운 한국형 스팀청소기가 나온다면 팔릴 수 있을까요?”
“그런 제품이 있다면 당연히 대박이죠. 아줌마도 걸레질하기 힘들잖아요. 그 힘든 걸 간편하게 해결해준다는데 어느 주부가 환영하지 않겠어요.”
“그렇군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승리의 깃발이 소리없이 나부끼고 있는 듯했다.
빨리 기술자를 찾아 개발 가능성에 대해 묻고 비용과 시간에 관한 자세한 계획을 짜야 했다. 이보다 앞서 현재 누가 이 제품을 개발중인 건 아닌지, 시중에 유사 제품이 나와 있는지, 제품에 관한 규제 관련 법규가 있는지, 혹시 특허를 내놓은 상품이 있는 건 아닌지 등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중요했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이상 공무원 생활을 병행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드디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꼭 그 힘든 길을 가야겠냐고 만류하는 동료들에게 걱정 말라는 표시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오는 길, 두려움은 없었다.
먼저 집을 담보로 잡혀 개발비용을 마련한 후 ‘한영전기’란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었지만 내 회사를 차리는 과정은 즐거웠다. 전문가에게 기술 개발을 맡겼으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해 겨울, 희망과 불안으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시간이 흘러갔다. 애타는 심정으로 여러 달을 기다렸으나 개발에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돈과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가전제품은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데 기초적인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이런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는 없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암담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쉽게 만들 수 있다던 기술자도 점점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실험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번에는 KAIST며 포항공대 등 유명한 물리학 박사와 공대 교수, 소문난 기술자를 찾아 다녔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허리를 숙여가며 도움을 청했다. 어떤 박사는 ‘안 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해 보지 않고는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렇게 미친 듯이 돌아다니다 보니 점점 제품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나름대로 기술적인 노하우가 생겼다. 계속되는 실패, 또 실패…. 실험은 계속 실패하는데도 이상하게 점점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공자님 말씀에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가다 보면 그들에게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고 했듯이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니다 보니 그들에게 얻은 기술 정보와 과학적 지식이 내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rhahn@steamcleane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