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여름 MSN 모바일 서비스 개발을 앞두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벤처기업이 미국의 거대 기업과 직접 계약을 한 사례가 거의 없던 터라 몇 가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우선 복장의 문제. 그 나름대로 신경을 쓴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계약에 임했지만 편안한 복장의 MS 임직원들 앞에 서니 딱딱하고 어색하게 비쳤던 것이다.
또 하나 보증보험과 관련한 해프닝. 당시 MS는 소프트웨어(SW) 개발 계약을 위해 보증보험을 요구했는데 영업·자동차·산업재해·고용 등과 관련된 보험과 전문가 과실책임보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책임보험 6가지였다. 귀국해서 손해보험사들을 돌아다니며 증빙서류를 준비했으나 전문가 과실책임보험 및 지적재산권 침해책임보험은 국내에서 아예 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부랴부랴 외국계 손해보험사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대답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불법 SW 사용률이 높아서 보험 가입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MS에 부탁해 해당 보험은 빼고 겨우 계약했으나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뭐라 변명하기 힘들었던 기억이다.
오늘도 SW 분야에서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은 저마다 신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을 위해 불철주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내 SW산업은 불법복제로 멍들어가고 있고 버티다 못한 기업들이 사업을 접는 일도 흔하다.
미국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SW 불법복제 비율은 46%로 OECD 회원국 평균인 36%를 상회했고, 피해 규모로도 전체 국가 중 15위로 5060억원에 이르렀다. 우리가 던진 돌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셈이다.
단지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리의 기술과 실력을 인정받고, 우리가 개발한 SW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이젠 개인 및 기업의 정품 SW 사용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해외 기업들과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이 필수다.
이규동 지오텔 이사 man@geo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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