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통방융합시대의 요금 경쟁
유선전화와 초고속인터넷, 방송서비스를 묶어 저렴한 요금에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 환경이 성큼 다가섰다. 통신망의 광대역화, 방송망의 인터넷프로토콜(IP)화가 진전되면서 통신·방송 등 양대 산업의 융합서비스 채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컨소시엄인 KCT가 정통부로부터 인터넷전화(VoIP) 사업권 허가를 확정받은 것이 그 단초다. KCT의 주축인 SO들이 케이블망의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면서 하반기부터는 TPS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방송 진영의 엄청난 반발탓에 시장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통신사업자들의 IPTV 서비스도 통신업계의 TPS를 가늠할 열쇠다. 이른바 광대역융합네트워크(BcN) 환경이 촉진되면서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통·방 융합 서비스의 매력을 만끽할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통·방 융합 환경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혜택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다양한 첨단 서비스를 저렴하게 향유할 수 있는 ‘요금혜택’이다. 실제로 TPS 상품은 고객 입장에서 단일 서비스를 이용할 때보다 저렴한 요금을 내는 것은 물론 요금고지서도 한 장으로 처리할 수 있다. 서비스마다 불편함을 호소할 때 각종 문제점에 대한 장애처리도 한결 수월해진다. 지난 2004년 7월 SO들과 연계해 TPS 시범서비스를 제공했던 데이콤의 사례를 보면 이같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데이콤은 당시 SO와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와 제휴, 초고속인터넷 고객에게 VoIP와 방송을 결합해 제공했다. 데이콤은 초고속인터넷의 경우 3년 약정 2만5200원을 11% 할인된 2만2400원에, 케이블방송은 신규가입자의 설치비 4만4000원을 면제했다. 기존 가입자에게는 3개월 요금 3만9600원을 깍아줬다. 시외전화도 일반전화(14.1/10초)에 비해 최대 85%까지 저렴한 3분당 39원의 요금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사업초기였던 만큼 협력사들과의 요금 통합고지는 해결되지 못해 불편함이 있었다. 당시 KT도 스카이라이프와의 제휴를 통해 TPS 상품을 제공했다. 하지만 KT는 데이콤 등과 달리 지배적사업자의 규제에 묶여 결합상품 요금책정시 정통부의 인가를 거쳐야 했다. TPS 장점인 요금 경쟁력에서는 제약을 받았던 것이다.
SO업계의 TPS 요금 전략은 앞으로 초미의 관심사다. 초기 통·방 융합서비스에 어떤 요금을 구사할지에 따라 융합시장의 세력판도는 물론 향후 요금혜택, 나아가 정부의 새 요금규제 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SO가 기간통신사업권을 받을 경우 종전처럼 ‘저가형’ 전략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통신업계와의 공정경쟁 환경을 위한 정부의 요금규제는 최소 수준이라도 가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동안 SO에 저렴하게 제공돼왔던 기간통신사업자의 백본망 사용료 부담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올해 TPS 환경은 당분간 통신 진영과 방송 진영간에 격렬한 견제가 이뤄지는 가운데, ‘요금’은 최대 현안이자 정부의 새 규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데이콤 관계자는 “시장상황에 따라 달라질 문제지만 융합서비스 요금은 모든 경쟁사보다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면서 “요금에 민감한 가정시장 특성상 다양한 맞춤형 요금이 주효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BcN으로 대변되는 네트워크 환경과 TPS로 상징되는 서비스 특성을 감안할 경우, 초기 요금은 기본 투자비용과 향후 시장경쟁 상황을 감안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망 투자비용이나 인건비, 각종 콘텐츠 조달비용이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고, 통신·방송 등 양대 시장간의 경쟁상황은 물론이고 기존 단일 시장내 경쟁상황도 복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는 뜻이다. 초고속 인터넷이나 VoIP 등과 결합될 경우 추가 요금할인 혜택이 주어질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결론이다.
특히 사업자의 요금전략과 더불어 정부의 요금규제를 어떤 식으로 수립할지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지배적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의 의 경우 시내전화·이동전화에 한해 요금인가제를 두는 한편, 결합판매도 비교적 까다롭게 규제해왔다. 방송시장의 경우 현행 방송법 제77조에 따라 유료방송 사업자는 이용요금 및 기타 조건에 관한 약관을 방송위원회에 신고해야 하고 이용요금도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IPTV가 현행 방송법 규제를 받게 된다면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에 따라 IPTV도 같은 요금승인 규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전통적인 요금규제가 통방 융합시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상직 변호사(통합융합법팀장)는 “요금규제 방향은 현재 진행중인 입법 작업이 진전되면서 논의가 활발해 질 것”이라며 “만일 종래의 요금승인제를 모두 완화하는 방향이라면 요금규제는 사후적 규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36조에서 규정한 것처럼 사업자가 비용이나 수익을 부당하게 분류해 요금을 산정하는 행위를 사후 규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통·방 융합 시대를 대비하면서 새 요금규제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시급한 선결과제는 무엇보다 시장획정과 시장경쟁상황 평가에 대한 공감대와 기준을 도출하는 일이다. 예전처럼 확연히 구분된 시장영역이 확연히 구분되고 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쉽게 가려낼 수 있는 시장환경은 이제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기고-통방융합시대의 요금규제 정책 방향
:이상규 중앙대 교수(경제학과)
통신, 방송 시장은 ‘규모의 경제’와 ‘공공재적 서비스’라는 특성 때문에 그동안 많은 규제들이 존재해 왔다. 사업권 허가제도, 비대칭규제, 요금인가제, 보편적 서비스제공 의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제도는 안정적인 서비스 여건이나 기본 서비스에 대한 접근보장, 시장경쟁 활성화를 통한 이용자 편익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물론 시장이 변화한다고 해서 규제제도의 근본 목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새 규제 틀을 고민할때도 마찬가지다. 규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방법론이 변할 수는 있어도 목적이 달라질 수는 없다. 특히 다양한 규제수단 가운데 소비자 편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게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요금을 사전 규제할 수 있는 요금인가제다.
지배적 사업자가 지나치게 높은 독점적 요금을 책정하거나 경쟁사업자를 퇴출시키려는 의도에서 약탈적 요금을 설정하는 경우, 잠재적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막으려는 진입저지 요금, 거래상대방을 차별 대우하는 요금 등을 막을 수 있는 제도다.
앞으로 통신과 방송의 융합시대에서도 요금 규제제도의 목적은 다르지 않다. 중요한 점은 특정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하는지의 여부와 시장경쟁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방 융합현상은 경쟁상황 평가를 제대로 판단하기에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시장 경쟁상황평가를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시장획정 이슈다. 융합현상은 이종 서비스간 대체성(경합성)을 증가시켜 별개 영역으로 나누었던 경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경쟁상황 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무엇이냐이다. 기존 지표는 통신과 방송 융합 시장에서는 적용하기 곤란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장점유율이다. 통신시장에서는 가입자수 또는 매출액 기준 점유율을 계산할 수 있지만 가입자 개념이 없는 공중파 방송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 계산할 수 있다 해도 그 지표가 방송시장의 지배력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통방 융합이 가속화할수록 경쟁상황평가 지표는 수정·보완돼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요금규제 제도 수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처럼 시장경쟁 상황평가에 적합한 도구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융합시대에 요금규제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적의 규제형태가 무엇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투자보수율을 바탕으로 한 인가제, 가격상한제, 수익배분 등의 제도는 각각 장단점이 있으므로 어떤 규제제도가 융합시대에 가장 적합한지 보다 발전적인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2년과 2013년 요금제 형태 변화 예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