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였던 지난 14일은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미국 특허청에 ‘전화발명’ 특허를 접수한 날이기도 하다. 1876년 벨은 조수인 웟슨과 함께 사람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는 데 성공한다. 전화기를 발명한 날, 벨이 옆방의 웟슨에게 했다는 유명한 말, “미스터 왓슨, 이리로 오게. 자네가 보고싶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전화 통화기록이다.
그러나 벨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전화기를 발명한 또 다른 천재 과학자가 있다. 이젠 누구도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엘리셔 그레이다. 그도 1876년 2월 14일 오후, 자신이 개발한 전화기를 등록하기 위해 특허국을 방문했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 특허를 신청한 것도 바로 그날 오전이다. 불과 몇 시간 차이로 그레이가 아닌 벨이 전화기 특허를 받게 된 것이다.
벨은 과학 계통보다는 음성학과 농아교육에 종사했던 사람이다. 이에 반해 그레이는 평생을 전화기 개발에만 몰두한 전신 엔지니어다. 전자기학 전문가였던 그레이가 기술면에서 벨보다 조금 앞서 있었다는 것이 주변 과학계의 평가다. 하지만 벨은 전화기 하나로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데 반해 그레이는 후회와 통탄의 인생을 살아야 했다.
전화기에 한 맺힌 또 다른 사람이 윌리엄 오톤이다. 그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하던 당시, 세계 최고의 전신회사이던 웨스턴유니언 사장이다. 벨이 음성전화 기술 특허를 10만달러에 팔겠다고 제안했을 때 오톤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주변 사람 대부분이 벨의 전화 발명을 ‘장난감’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벨은 자신의 발명품을 인류 미래에 기여할 창조적인 대상으로 보았다. 그래서 1878년 회사를 만들었고, 이후 급성장해 1910년에는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웨스턴유니언의 경영권을 확보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레이엄 벨의 명성과 부는 그레이보다 불과 몇 시간 앞서 전화 특허를 등록한 행운도 있었지만 ‘창조적 정신’과 ‘미래를 보는 눈’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IT산업부 차장·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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