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양극화 해소와 소탐대실

모건스탠리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디 시에 박사는 월가에서 대표적인 한국 경제 비관론자로 꼽힌다. 그런 그가 2006년 새해를 맞아서는 덕담을 했다. “올해는 중국도 인도도 아닌 한국의 해”이며 “한국 경제는 선진국형으로 성공적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관심을 끄는 그의 말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대기업을 죽이거나 약화시키면 13억 인구의 중국과는 아예 승부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면서 그는 “부자와 빈자 간 대립, 보수와 진보 간 주도권 다툼이 지나치면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솔직히 그의 말은 ‘그나마 지금 있는 쪽박마저도 깨기 전에 소모적인 각종 논쟁을 그만두라’는 경고로 들린다.

 새해 벽두부터 우리 사회에는 각종 논쟁과 불협화음이 가득하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제기한 양극화 해소 문제 역시 치열한 논쟁거리가 됐다. 재정 위주, 다시 말해 세금 인상 및 세원 확대를 기반으로 하는 양극화 해소 접근방식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양극화 해소책의 골자가 복지예산 확대만은 아니다. 시장개방 확대와 일자리 만들기도 상당히 강조됐다. 노 대통령은 일자리 만들기야말로 최선의 양극화 대책이라면서 “일자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복지예산 확대 방안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계층 편 가르기를 부추겨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일자리 창출과 시장개방은 그 방향 설정에 전혀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정부 정책의 기조와 이를 실행할 인재 중용 시스템 등이 진정으로 일자리 창출과 시장 개방의 방향과 합치되고 있느냐 하는 점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 등의 정치적 이유가 진정한 양극화 해소책보다 우선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다. 진 장관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서울시장 혹은 경기도지사 차출설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진 장관의 지방선거 후보 차출이 과연 국익 혹은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브릭스(BRIC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골드만삭스는 최근 브릭스를 대체할 새로운 ‘차세대 11개국’(Next Eleven)을 선정하면서 한국을 가장 주목할 만한 국가로 지목했다. 이처럼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곳에서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이는 물론 수많은 IT 관련회사의 노력 덕택일 것이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통부의 미래전략(IT839 전략)이 잘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IT839가 없었어도 작금의 휴대인터넷(와이브로)이나 디지털 멀티미디어방송(DMB) 등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돼 세계인이 감탄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바로 그렇기에 유럽연합(EU)의 정보통신 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는 2010년까지의 IT 전략을 숙의하는 지난해 9월 ‘i2010’ 콘퍼런스에서 진 장관이 IT839를 소개하는 주제발표를 했을 것이고,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에도 초청받았을 터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일본 정부가 최근 ‘왜 우리 정통부 장관은 초청하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다보스포럼 측에서 ‘장관이면 다 같은 장관이냐’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고유가와 원화절상의 팍팍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생존전략으로서의 미래 디자인을 잘 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도 결국 이 틀 속의 문제들이다. 경제성장 없는 양극화 해소 노력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신성장동력 창출에 가장 이바지하고 있는 주무 부처 장관을 선거판으로 내모는 일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선거라는 정치적 목적에는 혹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 경제에는 커다란 손실을 가져올,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것임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한세억 동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sehan@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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