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경쟁자`…따져보니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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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동지는 종이 한 장 차이’

 디지털 복합기와 프린터 등 사무기기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날로 치열해 지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은 이제 막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그 성장세가 가히 폭발적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브랜드의 ‘경연장’으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이미 신도리코·제록스·삼성전자·HP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올해에만 렉스마크·오키·도시바 등 신규 브랜드가 새로 진출했으며, 내년에는 델까지 국내 프린터 시장에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분야별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적이면서 동지’인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로 인한 업체 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재미있는 관전포인트다.

 ◇델의 프린터 파트너는 렉스마크=델은 내년 초 국내 프린터 시장에 전격 진출한다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델은 프린터 원천 기술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제품을 아웃소싱할 계획이다.

 대표적인 프린터 파트너는 렉스마크. 그런데 공교롭게도 렉스마크 제품의 생산 파트너는 신도리코와 삼성전자다. 결국 델 프린터도 국내 혹은 중국의 이들 공장에서 생산할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델이 프린터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신도리코가 국내 시장을 공략해 왔고, 렉스마크도 지난 6월 렉스마크코리아를 공식 설립하고 자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프린터 라인업이 없는 삼보컴퓨터가 렉스마크 복합기를 패키지 형태로 국내 시장에 독점 소개하는 상황이다. 또 신도리코는 가장 큰 경쟁사인 후지제록스에 일부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결국 이들 업체는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지만 보이지 않는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삼성 엔진 공급업체는 도시바=디지털 복합기 분야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대형 복합기를 출시하고 복사기와 프린터의 전체 라인업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삼성도 잉크젯과 레이저 제품 자체 엔진을 가지고 있지만, 고속 엔진기술의 일부는 도시바에서 들여 왔다.

 도시바는 이에 앞서 국내 사무기기 유통업체인 카이시스를 통해 이미 도시바 브랜드 알리기에 나섰다. 최근에는 아예 도시바테크코리아를 설립하고 직접 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결국 도시바 제품이 3개 회사를 통해 공급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 게다가 삼성전자는 한국HP와 치열한 시장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HP와 소모품인 잉크 등은 여전히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밖에 전세계적으로 HP와 코니카 미놀타가, 델이 삼성전자와 코닥·제록스 등과 프린터 분야에서 공조하고 있는 등 프린터 시장은 어느 분야보다 합종연횡이 거세지고 있다.

 ◇‘엔진기술’ 따라 합종연횡=소비자 시장에서 치열한 브랜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불가피하게 ‘적과의 동침’을 이루고 있는 데는 복합기와 프린터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다른 하드웨어 제품에 비해 이 분야는 원천 엔진기술을 가진 업체가 드문 상태. 그만큼 진입 장벽도 높다. IT가 보편화하는 추세지만 프린터만큼은 여전히 지적재산권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고수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프린터 분야에서 엔진 기술을 가진 업체는 불과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드물다”며 “이들 업체는 크로스 라이선스를 통해 ‘아성’을 구축하는 대신 다른 업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시장 진입을 막는 추세여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