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니콜 연 1억대 판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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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휴대폰이 걸어온 길은 ‘무에서 유’를, ‘불가능을 가능’으로 되돌린 역사다. 여기에는 세계 최고의 명품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팔겠다는 임직원들의 열정과 고집이 있었다. 험난한 산을 오르면서 ‘한국 지형에 강하다’라는 애니콜 휴대폰의 성능을 입증했던 수많은 직원들의 땀이 맺은 결실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은 애니콜’ ‘디지털 익사이팅 애니콜’, ‘내 손안의 큰 세상’으로 이어지는 삼성 휴대폰의 슬로건 마케팅도 삼성 휴대폰이 세계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이유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던 지난 87년. 당시 국내는 물론 세계 휴대폰 시장은 모토로라 등 거대 공룡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휴대폰 시장 진출에 대해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이 같은 염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88년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CDMA 휴대폰(모델명 SH-100)을 출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게다가 모토로라의 아성은 좀 처럼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94년 SH-700을 통해 내수시장 점유율을 15%로 끌어올리면서 모토로라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94년 8월 애니콜 브랜드를 도입하면서 시장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95년에는 ‘한국지형에 강하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시장점유율 52%를 차지, 모토로라의 10년 아성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 후 10년. 95년까지 100만대 수준이던 휴대폰 판매량은 본격적인 수출드라이브 전략에 힘입어 99년 1000만대, 2003년 5000만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1억대 돌파를 앞두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 동안 삼성전자는 모토로라와 세계 시장 2위 자리를 놓고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경쟁자가 됐다. 세계 1위 노키아의 아성으로 불리는 프랑스 등 서유럽 시장에서도 매출액 기준으로 1위 달성의 꿈에 부풀어 있다. 특히 프리미엄 전략을 바탕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명품 대접도 받고 있다. 루이비통, 페라가모 등 명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삼성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미래에 다가올 4세대 이동통신은 삼성전자가 리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기태 사장의 말은 뚝심과 열정에 이어 기술의 애니콜이 열어갈 새로운 세상을 예고하고 있다.

 ‘월드 퍼스트, 월드 베스트(World First, World Best)’라는 전략에 따른 테크놀로지 리더십은 3세대 이동통신 HSDPA와 와이브로 등 차세대 단말기를 통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김원석기자@전자신문, stone201@

◆애니콜 신화의 주역들

 ‘삼성휴대폰 신화’의 주역은 누구일까.

‘미스터 휴대폰’으로 불리는 이기태 현 사장이 그 정점에 있다. 여기에 무선사업부 소속 조병덕 부사장(개발실장), 최도환 전무(상품기획팀장), 윤지홍 전무(디자인팀장) 등이 있다. 물론 연구실 한켠에서 밤을 낮삼아 연구에 전념해온 연구원과 세계 곳곳을 누비는 영업맨 등 임직원 모두가 주인공이다.

정보통신사업을 총괄하는 이기태 사장은 명실상부한 애니콜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며 한국휴대폰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지난 73년 입사해 92년 휴대폰과 인연을 맺었던 이 사장이 진두 지휘한 10여년 동안 삼성 애니콜의 외형은 무려 100배 이상 불어났다. 또 삼성휴대폰이 유럽과 중국에서 ‘명품휴대폰’ 및 ‘부의 상징’으로, 러시아에서는 ‘국민브랜드’로 선정되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하도록 이끌었다.

이 사장은 ‘스피드경영의 표본’이라고 할 정도로 의사결정이 빠르다. 철저한 ‘현장형’ 최고경영자(CEO)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휴대폰 외에는 전혀 한눈을 팔지 않는 정열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유명하다.

해외 바이어를 만날 때 휴대폰을 벽에 집어 던져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준 뒤 협상을 시작했다거나, 품질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기 15만대를 불태워버렸다는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20여년 이상을 엔지니어로 근무해온 조병덕 부사장은 페이저를 청ㅁ 국산화한 주인공. 지난해에도 108개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3일에 한 번 꼴로 신제품을 내놓은 셈이다. 최도환 전무는 국내 최경량 PCS, 세계 최초 워치폰(시계형태 휴대전화) 등을 개발해 유명세를 탔다.

 윤지홍 전무는 지난 2003년 이건희폰(T100)에 이어 벤츠폰으로 불리는 E700을 설계해 1000만대 판매모델을 연속적으로 내놓은 주역으로 꼽힌다. 특히 윤 전무는 휴대폰 관련 디자인 및 기술력우위 제품을 조기에 출시, 시장을 선도했을뿐 아니라 디자인이 경영의 핵심자원으로 인식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박승정 기자>

◆협력사 클럽 `120-170`

“세계 최고 제품으로 우뚝 선 삼성휴대폰의 성공에는 협력사의 전폭적인 뒷받침이 밑거름이 됐다.”

바로 삼성휴대폰의 부품개발 업체와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등 상호 윈윈 관계를 쌓아온 협력사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현재 국내 휴대폰 부품 및 소프트웨어 개발사는 모두 2만3000여개에 달한다. 종사자 수는 63만명. 이가운데 부품업체가 2만개 정도이며, 60만명 가량이 이 분야 종사자다. 3000여개의 소프트웨어 개발사도 3만명이 넘는 인력을 거느리고 있다.

휴대폰이 국가 경제 발전의 견인차로 성장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중 삼성휴대폰 협력회사는 부품업체 120여개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170여개사 정도다. 삼성휴대폰 부품 협력업체 종사자 수만 해도 5만여명이며, 이와 관련 발생하는 부품업체들의 매출액은 연간 17조원 규모에 달한다.

이들 기업에서 신규 부품 및 기술개발을 위해 투자하는 금액도 연간 3200억원. 휴대폰이 부품산업 육성과 고용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내 휴대폰 부품업체들은 LCD·메모리·배터리·카메라모듈 등 휴대폰 핵심부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휴대폰 산업의 경쟁력이 여기서 나온다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 윤승철 상무는 “삼성전자의 휴대폰 국산화율이 올해 82%에 올라설 정도로 기반이 견실해졌고, 이를 기반으로 세트 제조기술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다”면서 “삼성전자와 협력사들의 견실한 윈윈 관계가 한국 휴대폰의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상무는 “다만, 수치를 앞세운 국산화율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이제는 어떻게 시장의 트렌드를 빨리 읽고 신제품을 한 발 앞서 출시, 시장을 선점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대”라고 덧붙였다. <김원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