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비즈니스 중심지 뉴욕의 번화가를 센트럴파크가 있는 59번가에서 시작한다고 본다면 카네기홀, 록펠러센터, 성 베드로 성당, 타임스퀘어 부근까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의 땅값은 워낙 비싸 한 달 임차료가 대략 평방피트당 500달러 혹은 600달러 정도다. 1피트가 약 30㎝, 1평이 가로 세로 6피트 정도라고 대충 계산한다면 뉴욕 번화가의 한 달 임차료는 평당 적게 잡아도 1800만원쯤 될 것이다. 이처럼 임차료가 비싼 뉴욕의 번화가에 우리나라 교보문고만 한 크기의 서점들이 성업중이다.
반스앤드노블은 전국 체인망을 가진 오프라인 서점이다. 뉴욕의 중심에 자리한 록펠러센터, 시티그룹센터, 브로드웨이의 링컨센터, 유니온 광장 등 대형 빌딩에는 빠짐없이 반스앤드노블이 1층에 자리잡고 있다. 반스앤드노블은 1년에 25달러의 연회비를 물려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뉴욕에서 출발하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보면 거의 대부분의 승객이 책을 읽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무엇인가 쓰고 있다. 그것이 시간당 최저 주차비가 10달러인 뉴욕에 살고 있는 뉴요커들의 모습이다. 적어도 뉴욕의 중심에서 미국 비즈니스를 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책을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서점은 그렇다 하더라도 동네마다 들어서 있는 공공도서관에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슈퍼마켓에서도, 학교 서점에서도 책이 팔리고 있다.
80년대 일본이 자동차와 가전제품, 부동산 투자로 미국을 공략하였을 때 미국의 많은 지식인은 ‘미국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탄식했다. 그 당시 일본 기업인들은 ‘대동아 전쟁의 패배를 되돌려 주었다’며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을 강타한 헤이세이 불황은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졌고, 미국은 오히려 3% 내외의 견실한 경제 성장을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 중국에까지 제조업을 모두 내어 주고서도 ‘경제학 교과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제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최근 레스터 서로 MIT 교수는 “중국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21세기가 아니라 22세기쯤”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두 중국의 시대를 예상하고 있지만 21세기가 다 가기 전까지는 미국의 경제적인 지배가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이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산업 사회 이후의 정보화 사회, 자본주의 이후의 신자본주의 사회(post capitalism society)로 변신을 거듭해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을 통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가오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미래학자들, 예를 들어 대니얼 벨,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프란시스 후쿠시마, 폴 케네디 같은 학자들이 다가오는 미래의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역설해왔고, 이들의 책은 늘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었다.
이런 책들을 통해 미국인들은 변하는 세상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 나간 것이 아닐까. 이들이 역설해온 미래의 ‘지식 사회’는 현재 뉴욕에서 보는 ‘책을 통해서 지식을 쌓고 실제 산업현장에서 이를 정교하게 만들어 나가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김대중 정부 출범시부터 외쳐온 ‘지식강국’ ‘지식사회’에 대해 우리 사회가 기대를 가졌던 것은 정보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인터넷과 통신산업을 발달시키면 그러한 기반이 자연스럽게 지식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도, 그것을 내면에 쌓아나가는 데도, 쌓인 지식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도 실패하고 있음을 본다. 거리에 드문드문 보이던 서점들은 대부분 카페와 식당에 자리를 물려 주었고,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인터넷은 지식을 나누고 생성하는 마당이 아니라 표피적인 정보와 욕설, 쓰레기 정보가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올해 2월 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 발표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대학 도서관 분석과 시사점 연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식 국력은 미국의 5.9%, 일본의 1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가을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 가을에는 책을 읽자. 책을 읽는 국민이 더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모두 그동안의 정쟁과 사회적인 논쟁을 접고 이 가을만이라도 책을 읽었으면 한다. 자꾸만 높아져 가는 하늘과 아침 저녁으로 스치는 소슬바람 속에 책읽기 말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겠는가.
◆최종욱 마크애니 사장 juchoi@markan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