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영섭 ARM코리아 사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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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을 그만두기 전, 국제구매부 근무 당시 LG전자를 방문해 PC용 모니터 수출 협의를 할때 당시.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필자.

③집을 담보로 창업자금을 보태다

 IBM의 국제구매부에서 8년을 일하고 지난 95년도에 영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구매부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타성이 붙었고 내가 해보지 않은 분야에서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영업을 해 봐야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주위의 권고와 당시 국제구매부의 조직 변경도 내가 결심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됐다.

 영업부는 구매부와는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내가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나는 IBM의 중앙처리장치(CPU)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D램 같은 부품 판매를 맡게 됐는데 구매부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많이 보게 됐다. 판매와 구매, 정반대의 세계를 경험한 것은 나에겐 크나 큰 자산이 되었다. 지금도 이슈가 생길 때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습관이 있는데 협상을 위해 꼭 필요한 무형의 자산이 아닌가 싶다.

 지난 97년 나는 정들었던 IBM을 떠났다. IBM에서 그 당시로는 혁신적인 명예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나는 만류를 뿌리치고 창업을 결심했다. 안정된 수입원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에 대한 미련이 있었지만 나의 마음 속에는 ‘마흔이 되면 사업을 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나는 그리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3형제 중 맏이로 자랐다. 더욱이 아버님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시고, 가세가 급속히 기울게 되면서 장남으로서의 부담감도 상당히 컸다. 때문에 내 마음 속에 사업을 통해 기운 집안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결심이 강박관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마흔이라고 못박은 것은 이쯤이 되면 동생들도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전적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계획대로 마흔 살이 되던 해인 지난 95년, 나는 IBM에서 같이 명예퇴직했던 동기 4명과 함께 ‘건한’이라는 시스템통합(SI)업체를 창립했다. 퇴직금을 모은 2억4000만원이 자본금이 됐다. 우리의 사업은 기존 컴퓨터를 인터넷과 네트워크로 엮어서 시스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솔루션은 강의를 하거나 쌓여 있는 정보를 분류 저장 검색하는 등의 기능과 함께 주문형 비디오(VOD) 기능이 있었다. 이런 기능이야 지금에는 아주 흔한 것이지만, 97년 당시만 해도 신기술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아무리 창업자가 IBM 출신들이라고 해도 우리는 갓 출발한 소기업이었고 우리와 비즈니스를 하려는 기업은 아무 데도 없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제안서를 쓰고 발품을 팔았지만 창업 1년 6개월 만에 자본금이 모두 동이나 버렸다.

 여러 금융기관을 찾아다녔지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곳은 없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담보로 은행융자를 얻었다. 이 상태로 몇 달만 더 가면 나를 포함한 동업자들은 십년 동안 모은 재산을 일순간에 잃고 거리로 나앉을 판이었다. 괜한 짓 한 것 아닌가 하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애꿎은 담배만 늘었다.

 sam.kim@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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