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때아닌 로봇 헤게모니

조윤아

우리 기술로 개발한 네트워크 지능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마루’가 오는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2005) 행사에서 시연을 한다는 본지 보도가 나간 어제 아침, 기자는 산업자원부에서 로봇을 담당하는 사무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 “이번 APEC 기간 개최하는 IT전시회에서 정부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로봇을 모아 로봇관을 운영할 계획인데 ‘마루’의 시연은 논의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이 사무관은 나아가 “KAIST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 업그레이드 버전을 이번 APEC에서 최초로 공개할 계획인데, 휴보에 한참 성능이 못 미치는 ‘마루’를 시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에 대해 ‘마루’ 시연을 계획했던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로봇관은 범정부 전시관이 아니라 산자부의 전시관 중 하나며 ‘마루’시연은 정통부가 추진하는 행사인데 타 부처의 계획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느냐”며 산자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결론을 내리자면 정통부와 산자부가 이번 APEC2005 행사에서 세계 각국에 우리 로봇 기술력을 널리 알리기 위한 좋은 취지에서 시작해, 결국 자기 부처가 주도해 온 로봇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각자 공개하기로 하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무궁무진한 시장가능성을 갖고 있는 로봇을 두고 두 부처가 벌여 온 ‘헤게모니 다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APEC이라는 세계적인 행사 개최를 위한 준비에 각 부처가 힘을 합쳐도 부족할 마당에 유사한 행사를 준비하면서 부처 간 논의도 하지 않은 점, 타 부처의 사업을 폄훼하는 발언을 거리끼지 않는 점 등을 보니 때 아닌 부처 이기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부산 APEC2005는 2002 월드컵에 이어 우리나라가 3년여 만에 개최하는 세계적인 행사다. 부산 APEC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부디 개막 전까지 관련 부처 간 원만하고 열린 대화로 준비에 만전을 기하길 기대해 본다.

  경제과학부·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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