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쟁패’의 전직은 동전의 양면이죠. 능력치가 초기화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처음부터 다시 키울 수 있다는 점은 좋아요. 그런데 그동안 익힌 무공도 모두 사라져요. 그것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는 뜻이죠.”
일주일만에 만난 봉낭자 사부는 전직에 대해 설명했다. ‘구룡쟁패’의 레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전직이 가능하다. 전직이란, 게임에서 초기 설정으로 정한 직업을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더 세분화된 직업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MMORPG는 전직을 통해 직업을 세분화될 수 있도록 설정하고 있다. 즉, 도둑이라도 좀도둑이냐, 강도냐 하는 등 선택의 갈림길이 등장한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캐릭터의 전문성을 높이고 더욱 다양한 직업군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단 전직을 수행해 캐릭터를 계속 키우면 돌이킬 수 없다. 현재 ‘구룡쟁패’의 전직은 1차만 가능하며 2차는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역사가 오래된 게임일수록 전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봉낭자는 전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굳이 전직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지금까지 배운 무공이 아까웠다는 것. 하지만 현란한 무공을 구사하는 타 유저의 동작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전직의 부러움이 전해졌다.
현재 ‘구룡쟁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직 직업은 기공사(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다. 최근 업데이트된 던전 ‘생사결’로 인해 먼 거리에서 장풍을 쏠 수 있는 캐릭터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생사결로 한번 가보죠. 구경도 하고 다른 고수들과 교류도 할 겸.”
“생사결은 아무나 못 가요. 고수 중의 고수만 갈 수 있어요. 고수도 살아 나오기도 힘든 곳인데…. 일단 근처에나 가 볼까요?”
“음. 그렇게 무서운 곳인가요? 가다가 죽으면 어떻해요. 얼마나 고생해서 키운 놈인데….”
“경공술이 있잖아요. 바부….”
그렇다. ‘구룡쟁패’에는 경공술이 있다. 어떤 몬스터도 따라오지 못하는 왕스피드 경공. 이를 이용하면 구경정도는 쉽사리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시무시한 몬스터 등짝을 한대 때리고 도망갈 수도 있다.
생사결 던전은 남사망곡에 있다. 남사망곡에 가기 위해서는 일단 정주로 가야한다. 정주 포양촌에서 북쪽 방향으로 죽 올라가다 보면 석가장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동쪽으로 북태령을 지나 무안촌까지 간다. 무안촌에서 다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용문로가 나오고 계속 직진하면 유적지가 하나 있다.
유적지에는 많은 유저들이 모여 수련을 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장소는 몬스터가 공격을 하지 못하는 일종의 성역이다. 정보도 교환하고 파티도 맺고 혼자 수련도 쌓는 곳이다. 보통 여기서 파티를 맺어 남사망곡으로 들어간다. 생사결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절정의 고수 9명이 모여야 가능하다고.
무공 수련에 여념이 없는 한 고수에게 말을 걸어 보았으나 묵묵부답. 마찬가지로 다른 유저에게 친한 척하며 다가갔으나 레벨을 대충 훑어 보더니 다른 자리로 가 버렸다.
“아무리 레벨이 낮아도 그렇지 너무 하는군!”혼자 분노에 차서 괜히 옆에 있는 몬스터를 한방 갈겼다. 안전지대 밖으로 나온 것도 모르고 한가닥 하게 생긴 몬스터에게 시비를 걸었으니 큰일났다. 열받는 몬스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 묘령의 여인이 긴급히 달려와 도와줬다.
도와달라고 외치지 않았으나 돌아가는 사태가 심상치 않자 사랑의 손길을 뻗어 준 것이다. 경공으로 도망가면 살 수 있었겠지만 일단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당연한 것 가지고 별 말씀을. ‘구룡쟁패’의 고수들은 말이 없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타입이 많지요. 여기는 위험하니 다른 사냥터로 가시는 것이 좋겠네요.”
그녀는 친절하게 이런 저런 조언까지 해주고 사라졌다. 행색을 보아 하니 분명 개방의 일원. 역시!!!
그러나 생사결 던전을 반드시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다시 출발했다. 남사망곡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살벌한게 정말 장난이 아니였다. 취검객이라는 몬스터가 계곡의 입구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공으로 그들을 무시하며 계속 달려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사결 던전으로 통하는 웅장한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이 절벽이고 오로지 다리 하나로 연결된 그곳은 바라보기만 해도 오싹한 기운이 넘쳐 흘렀다.
그 주위에는 고수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유일한 안전지대인 다리에도 유저들이 옹기종기 모여 내공을 보충하고 있었다. 그들은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줬는데, 생사결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가지 색깔의 해골이 필요하고 그 해골은 주위의 몬스터를 잡아야만 얻을 수 있으나 몬스터가 워낙 강해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니 어여 집으로 돌아가라는 소리였다.
던전 내부로 들어가 직접 구경하고 싶었으나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는 소리에 절망했다. 눈물을 머금고 귀환 결정. 가장 만만한 북태령의 사냥터로 다시 돌아갔다.“고수가 되기 위한 왕도는 없어요. 편법으로 캐릭터를 구입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해요. 남들 잘 때 안 자고 남들 먹을 때 안 먹고 남들 레벨 올릴 때 같이 올려야만 최고수가 될 수 있지요. 올바른 방향을 위한 몇 가지 조언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열심히 수련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강호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어요. 원래 고수란 명예를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봉낭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견 차이로 인해 언쟁도 가끔 있었지만 장장 28일이나 강호를 함께 뒹굴며 거친 몬스터와 싸우고 온갖 미션을 수행했던터라 매우 아쉬웠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사부에게 이별을 고했다.
<김성진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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