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은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며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로마인이 수백년간 대제국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했다. 이에 대한 답은 ‘원천기술에서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못하고 부품과 소재에서는 일본보다 못하고 시장규모에서는 중국보다 뒤떨어지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세계 1등 국가로 설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일개 소도시에 불과했던 로마가 약 1300년간 세계 대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은 바로 인프라, 특히 오늘날의 고속도로망에 비견될 정도로 훌륭한 ‘도로망’의 구축이었다. “정보전달만 된다면 황제는 어디에 있어도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변방에서 전쟁을 하더라도 훈령만 보내면 통치가 가능하다”는 한 원로원 의원의 발언은 2000여년 전 로마가 이미 ‘네트워크’와 ‘정보통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불모지와 다름없던 IT산업으로 20여년 만에 우리나라가 세계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 등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보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광대역 네트워크와 IT기술을 바탕으로 한 반도체, 이동전화 단말기, TFT LCD, 디지털TV, 온라인 게임 등은 세계 1등 상품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우리나라의 IT강국 등극은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서비스 도입, 서비스 활용을 가능케 하는 인프라 구축, 기기 제조능력 제고가 삼위일체를 이루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경쟁국에 한 발 앞서 새로운 IT서비스를 조기 도입하고 제품화해 새로운 분야의 IT산업을 선점하는 발전전략이 적중한 데 기인한다.
최근 IT산업은 네트워크 광대역화와 컨버전스화로 산업과 제품 간의 경계가 붕괴되면서 신산업이 탄생하는 제2의 성장 모멘텀이 형성되고 있다. 이에 정보통신부는 제2의 성장 모멘텀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서비스 도입과 기술개발이 가능한 IT839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먹거리 창출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IT한국’ 나아가 ‘새로운 글로벌 인프라’ 구축을 위한 ‘철학’이요, ‘설계도’다.
로마 대제국의 두 번째 힘은 바로 ‘표준’의 제정과 실시였다. 로마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법률, 즉 표준을 마련하여 인종이나 민족이 다르고 문화를 공유하지 않아도 이 ‘표준’을 중심으로 공존공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로마법은 로마제국 멸망 후에도 1000여년간 존속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대륙법계 국가의 법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마식 표준도입의 첫 대상지역이 시저가 8년 만에 정복한 갈리아 지방(오늘날의 유럽 일대)이었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의 지상파DMB가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에서 국제표준으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을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이번 일은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그간 세계 각지에서 우리 지상파DMB가 갖고 있는 우수성을 알리고자 노력한 첫 성과로서, 향후 지상파DMB를 비롯한 IT839 관련 기술과 제품의 해외 진출을 가속하는 데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중심이 서진한다는 가설 하에 인류 역사를 팍스 로마나, 팍스 브리타니카, 팍스 아메리카나로 분류한 바 있다. 각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로마, 영국, 미국은 ‘인프라’와 ‘표준’의 선점과 강화라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IT839 전략은 세계 IT시장에서 그 ‘인프라’와 ‘표준’이 될 것이며 이번에 유럽 표준으로 채택된 지상파DMB를 시작으로 하는 IT839 전략의 해외진출은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팍스 IT 코리아나’를 건설하는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김선배 한국정보통신수출진흥센터 원장 sbkim@i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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