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대선 직전 이뤄진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를 도청한 녹음 테이프로 인해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이번 도청 테이프에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대선 후보부터 정치, 경제, 언론, 검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층이자 쟁쟁한 실력자들이다. 등장인물로 볼 때 대한민국 최대의 스캔들로 오를 만하다. 테이프 내용이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사상 최대 게이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사실과 진실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사실은 도청 테이프와 여기에 담겨 있는 내용 하나인데 진실에 대한 주장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번에 드러난 도청 테이프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국민은 그래서 더욱 총체적인 사실과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과연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사실과 진실에 관련된 이야기 하나. 승리를 자축하는 거대한 퍼레이드가 있었다. 삼촌이 조카를 목마 태우고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이윽고 조카가 말했다. “삼촌, 정말 희한한 자동차가 많네. 저런 자동차는 난생 처음이야.” 삼촌은 속으로 말했다. ‘자식, 웬 자동차 타령이야.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멋진 미희가 저렇게 많은데.’
삼촌과 조카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은 퍼레이드를 보았다. 사실은 하나인데 두 사람의 인식은 전혀 딴 판이다. 사실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을 빗댄 얘기다.
특히 정치인들과 연루된 대형 게이트일수록 사실과 진실은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있으되 진실은 사라지는 셈이다. 워터게이트는 언론의 폭로와 함께 닉슨의 사실 시인과 사임으로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반면 화이트게이트는 사실만 드러난 채 끝내 속시원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클린턴이 끝까지 시인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
사실이 있어도 진실이 밝혀지기 어렵거늘 사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 결과는 뻔하다. 테이프 하나로도 온 나라가 뒤집힐 지경인데 엄청난 양의 X파일이 공개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의 바람과는 달리 사실과 진실이 모두 덮여질 공산이 크다.
디지털산업부·유성호부장@전자신문,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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