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드랙퀸 가무단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10주년이 된다. 그동안 국내에 전무했던 영화제 문화를 싹틔웠고, 많은 시네키드를 양산한 진원지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지난 1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 영화의 성장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한 해외 영화인들과의 교류가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집약적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제에 소개된 아시아의 뛰어난 영화들, 상업성이 많지 않은 그런 영화들은 영화제가 끝나면서 사라진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CJ컬렉션이다.

영화판을 점령한 거대기업 CJ가 매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등장한 뛰어난 아시아 영화들의 국내 판권을 사서 배급하기 시작했다. 그 첫 작품이 대만 영화 ‘드랙퀸 가무단’이다.

그 뒤를 이어 이란의 아흐마드 레자 다뷔쉬의 ‘대결’, 말레이시아 감독 제임스 리의 ‘아름다운 세탁기’, 카자흐스탄 감독 세릭 아프리모프의 ‘사냥꾼’, 중국 신세대를 대표하는 주엔 감독의 ‘구름의 남쪽’이 CGV 체인(서울의 강변, 상암, 부산의 서면)을 통해 연이어 개봉된다.

비록 제한된 소수의 극장이고 CJ의 이러한 행보 뒤에는, 제작에서 배급에 이르기까지 거대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난을 희석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해도, 기획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 좋은 것이다.

퀴어 드라마 ‘드랙퀸 가무단’은 화려하지만 쓸쓸하다. 화려한 것은, ‘꽃마차 시스터스’의 여장 남자들 세 사람이 타고 다니는 트럭이 꽃으로 뒤덮여 있고 일곱 빛깔 무지개 조명이 언제나, 심지어 낮에도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쓸쓸한 것은, 이 영화가 결국은 이승에서 완성하지 못한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외양적 화려함은 오히려 내적 허무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대만의 여성감독 제로 추는 내러티브의 굴곡 있는 전개보다는 쓸쓸한 정서를 이미지로 표현한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트럭은 외양은 화려하지만 내부는 비좁고 옹색하다.

그들은 화려한 조명을 받고 노래를 부르지만 대도시의 외곽에서 겨우 수 십 명의 관객들만이 그들의 노래에 귀 기울일 뿐이다. 감독은 롱 쇼트 프레임의 한쪽 구석에 이동무대를 잡음으로써 거대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화려한 조명이 곧 사라져 버리는 것임을, 그 아름다움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꽃마차 시스터스’의 로이는 낮에는 죽은 사람의 염을 해주는 도교승이고, 밤에는 여장을 하고 트럭을 개조한 화려한 이동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는 바닷가에서 써니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다가 갑자기 이별통보를 받는다. 어느날 로이는 장례식의 염을 하러 가다가 그 남자가 써니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써니는 사고로 죽었지만 로이는 그를 잊을 수가 없다. ‘드랙퀸 가무단’은 일종의 영화적 진혼굿이다. 로이는 써니와의 아름다웠던 과거로부터 빠져나오기가 너무나 힘들다. 런던, 벵쿠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 아름답지만 쓸쓸한 영화는 굴곡 있는 내러티브에 의지하기 보다는, 공중에서 찰라에 사라지는 불꽃 같은 이미지에 의지하고 있다.

‘드랙퀸 가무단’의 극적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내러티브의 단순함은, 필연적으로 잦은 플래시백에 의존해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로이의 회상 장면에 의존하게 만든다. 하지만, 한국 영화들이 지나친 내러티브 강박증에 걸려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영화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이미지의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드랙퀸 가무단’은 보여준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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