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컴퓨터아트학원 개원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주어진 조건중에서 최선의 선택 보다는 남이 해 보지 않은 새 선택사항을 만들어 내는 쪽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한 언론사에 매년 초대되는 ‘명사미술회’의 멤버이기도 한데 ‘하늘은 파랗다’라는 식의 지식이나 선입견이 오히려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큰 방해가 됨을 느낀다.
그림을 그리는데 하늘색이 빨강이면 어떻고 노랑 또는 초록이면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특히 사업가가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어려움을 타개하려 할 때는 엉뚱한 공상을 통해 당연하다고 보여지는 일의 순서나 상식을 뛰어 넘어야 한다.
지난 90년 창립 20주년을 맞은 중앙정보처리학원은 국내 IT산업 규모로 볼 때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잘되는 기업도 다운사이징 구호를 외치며 비용을 절감하는 이유는 더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살아 남으려는 몸부림이다. 기업이 새로운 도전에 뒤떨어지고 느리면 발상의 전환으로 대응해 오는 경쟁자에 의해 순식간에 도태되어 버린다.
전산전문요원 양성만으로는 규모확대 한계에 도달했으니 손쉽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컴퓨터의 기초 이용분야로 범위를 넓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 분야는 이미 동네의 소형학원들이 담당하고 있어 우리가 뛰어들어기에는 도덕적으로도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아직 남이 하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찿아내기로 했는데 컴퓨터 디자인 교육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 올랐다. 마침 손으로 하던 디자인 작업이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조금씩 바뀌던 때 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마이크로급의 컴퓨터와 각종 소프트웨어, 고가의 컴퓨터 편집장비 등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직 때가 아니라거나 너무 위험하니 시설투자는 적고 모집은 쉬운 기초교육만 시작 한 뒤에 시간을 가지고 확장하는 것이 좋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낙후돼 있던 우리의 디자인 산업을 위해 누군가는 늦기전에 꼭 해야하는 일이며 다수의 초급자보다는 소수의 고급 인재가 사회에서 절실히 요구 되는 현실에 비춰 나는 모든 의견을 물리치고 과감한 시설투자로 고급과정까지 한꺼번에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94년 중앙컴퓨터아트학원을 개원했다.
중앙정보처리학원이라는 후광도 있었지만 놀랄 정도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젊은 디자인 전공 교수들이 직접 학원에 나와 공부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다. 컴퓨터아트학원은 그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7개의 분원을 개설했고 우리 나라 디자인산업이 한 단계 향상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중앙정보처리학원과 중앙컴퓨터아트학원을 설립해 큰 성공을 거뒀고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36년간 한 번도 1등을 내주지 않은 자만심이 미래의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긴장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지금까지의 오프라인 교육의 퇴조를 가져오고 머지않아 e러닝이 미래 교육시장의 승부를 결정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오프라인 교육의 규모를 점차 축소하면서 e러닝 개발에 힘쓰고 있다. 컴퓨터로 컴퓨터를 가르치겠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어 이제는 세계시장으로 나아 가고 싶다.
나의 그림친구인 한국폴라의 이청승 회장은 그의 저서 ‘본능경영’에서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배고픈 놈이 이긴다고 하면서 바닥을 딛고 일어서라고 말한다. 신경제의 거대한 변화 앞에선 우리는 누구나 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밑바닥 삼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
jse@ch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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